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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174

<동명왕>해부루의 동부여와 고두막한의 북부여(졸본부여) 해부루의 동부여와 고두막한의 북부여(졸본부여) 해부루의 동부여와 고두막한의 북부여(졸본부여) 한무제의 침입으로부터 나라를 지킨 고두막한은 고우루 단군에게 제위를 물러나라고 요구하였다. 압박을 견디지 못한 고우루 단군이 붕어하자 그의 동생 해부루가 뒤를 이어 단군으로 즉위하였다. 그러나 고두막한이 군대를 보내 계속 위협하므로 해부루는 국상 아란불의 주청을 받아들여 가섭원으로 옮겨 가게 된다. 이것이 바로 동부여이다. 동부여의 탄생은 한무제의 북부여 침공과 구국의 영웅 고두막한이 배경에 있는 것이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서는 이와 같은 장황한 스토리를 모두 생략하고 지극히 신화적으로 기술한 까닭에 믿을 수도 없고 안 믿을 수도 없는 절름발이 기록이 되고 말았다. 「북부여」에서 아란불에게 꿈에 나타나 .. 2019. 6. 17.
<고두막한>고조선,북부여,한사군 고조선,북부여,한사군 고조선,북부여,한사군 고조선은 본래 초대 단군왕검께서 나라를 진한, 번한, 마한이라는 삼한으로 나누어 다스렸다. 진한은 북만주, 마한은 한반도, 번한은 요동, 요서, 하북성, 산동성, 절강성까지 포함하는 중국 대륙 동부 지역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삼한은 나중에 삼조선으로 관제가 변경이 되었기 때문에 진한은 진조선, 번한은 번조선, 마한은 막조선이 되었다. 단재 신채호도 『조선상고사』에서 삼조선을 말하고 있다. 한편 해모수 단군이 붕어하던 서기전 195년에 연나라 사람 위만이 번조선의 기준왕에게 망명을 요청하였다. 준왕은 위만에게 연나라와의 접경 지대인 서쪽 변방의 국경수비대 임무를 맡겼으나, 위만은 그 은혜를 배반하고 1년 뒤에 준왕의 왕험성으로 쳐들어와서 나라를 강탈하였다. .. 2019. 6. 17.
<환단고기>북부여의 건국자 해모수 북부여의 건국자 해모수 북부여의 건국자 해모수 『환단고기』에서는 임술년 4월 초파일 진나라 시황제 때 해모수가 23세의 나이로 웅심산熊心山에서 일어나서 북부여를 건국하였다고 나온다. 이때의 임술년은 서기전 239년이다. 연대는 다르지만 『삼국유사』에 해모수가 임술년 4월 초파일에 북부여를 건국하였다는 부분만은 일치한다. 고조선은 초대 단군왕검이 건국한 지 1908년이 경과한 시점에 국호를 대부여로 바꾸었고, 그로부터 188년 후인 서기전 238년에 2096년의 장구한 역사를 뒤로한 채 문을 닫게 되는데 바로 1년 전인 서기전 239년에 해모수가 등장하여 북부여를 건국하였다. 해모수의 북부여는 고조선을 이은 나라로서 고조선과 마찬가지로 왕을 단군이라고 칭하였다. 해모수 단군은 재위 45년인 서기전 195년.. 2019. 6. 17.
<고주몽>해모수는 고주몽의 아버지? 해모수는 고주몽의 아버지? 해모수는 고주몽의 아버지? 몇 해 전 인기리에 방영된 드라마 ‘주몽’에서는 고주몽과 해모수를 부자 관계로 그리고 있다. ‘주몽’의 작가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나오는 이야기를 위주로 대본을 구성한 듯하다. 그러나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자세히 비교하면서 읽어 보면 이것을 쉽게 단정할 수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동명왕편’을 보면 해모수가 유화와 사통私通하여 낳은 아들이 고주몽이라고 한다. 그러나 『삼국유사』는 좀 다르다. 이와 연관된 내용이 「북부여기」, 「동부여기」, 「고구려기」에 조금씩 나오는데 서로 일치하지 않는다(『삼국유사』 원문에는 「북부여」, 「동부여」, 「고구려」 등으로 표기하고 있으나, 모두 국명을 지칭하는 것이기에 이들.. 2019. 6.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