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왜곡>공자는 어떻게 동방 단군조선 문화를 왜곡했는가?
공자는 어떻게 동방 단군조선 문화를 왜곡했는가?
공자는 어떻게 천자국 동방 조선의 역사를 왜곡, 배척했는가? 동방 조선의 후예들은 공자를 어떻게 평가해야 할 것인지 생각해 보자. 『단군세기』 서문에서 설說한 ‘잘한 것은 잘했다고 하고 못한 것은 못했다’고 평가하여 인물과 시대의 참모습을 진단해야 한다는 역사학의 정법에 비춰서 한번 생각해 보자.
첫째, 공자는 요순과 주나라 문무왕의 법을 찾고자 했다
공자의 손자 자사子思는 『중용』에서 “우리 할아버지 공자는 조술요순祖述堯舜하시고 헌의문무憲意文武하셨다.”라고 평했다. 즉 단군왕검과 동시대 동이족 출신인 요임금 순임금의 가르침, 그 문화 제도를 근본 모태로 삼고 주나라를 개창한 문왕과 그 아들 무왕의 법과 가르침(헌의憲意)을 본받았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공자는 요순과 문무왕의 법을 찾고 그 핵심을 후세에 전하려 한 것이다.
이에 대해 종도사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공자는 자신의 가르침에 대하여 ‘조술요순祖述堯舜하시고 헌장문무憲章文武하시니라.’(「중용中庸」30장)라고 하여 ‘요임금과 순임금의 사상, 심통, 법통을 근본으로 하고 문왕과 무왕의 국가통치 제도를 본받았다’고 하였다. 이 요순임금의 국가 경영 지침서, 그것이 바로 부루 태자가 전한 홍범구주인 것이다. (2006년 6월 《월간개벽》)
공자가 표본으로 삼은 요순 역사의 진실은 9년 홍수를 다스린 법도가 전해진 『홍범구주洪範九疇』 속에 담겨 있다는 것이다. 이에 공자가 밝히려 한 원형을 알려면 『서경』과 『홍범구주』를 동시에 살펴봐야 할 것이다. 짧은 지면 관계로 다 정리할 수는 없지만 결론은 단군왕검 시절 동방 조선 땅과 서방 지나 땅에는 대홍수가 있었고, 이때 치수법을 가진 종통 국가는 동방조선이었다는 것이다.
이는 지나支那의 『오월춘추』와 동방 조선의 『환단고기』 「태백일사」를 비교하면 대의를 파악할 수 있다. 공자가 살던 때에 노나라 남쪽에 오나라와 월나라가 있었다. 와신상담臥薪嘗膽으로 유명한 오나라와 월나라의 기록은 9년 홍수의 진실을 파악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한다.
禹乃東巡(우내동순)하야 登衡嶽(등형악)하고 血白馬以祭(혈백마이제)로대 不幸所求(불행소구)어늘
우는 곧 동쪽으로 순행하여 형산(형악衡嶽)에 올라가 백마를 죽여 그 피로 산신에게 제사를 지냈으나 신서는 발견하지 못했다.
禹乃登山(우내등산)하야 仰天而嘯(앙천이소)러니 因夢見赤繡衣男子(인몽현적수의남자)하야 自稱玄夷蒼水使者(자칭현이창수사자)라
그러자 우는 산꼭대기에 올라가 하늘을 바라보며 소리치다가 갑자기 잠이 들어, 꿈에 붉은색으로 수놓은 비단옷을 입은 남자(현이 창수사자)를 만났는데, 스스로 이렇게 말하였다.
聞帝使文命於斯(문제사문명어사)하고 故來候之(고래후지)로다
非厥歲月(비궐세월)이어늘 將告以期(장고이기)하리니 無爲戲吟(무위희음)하라 故倚歌覆釜之山(고의가복부지산)이로다 하고
“나는 현이 창수사자인데, 듣자 하니 황제께서 그대를 이곳으로 보냈다고 해서 기다리고 있었노라. 지금은 아직 볼 때가 아니니 내가 그 때를 알려주려고 하노라. 내가 농담한다고 생각하지 말지니, 나는 본디 복부산覆釜山에서 곡에 따라 노래를 부르고 있노라.”
東顧謂禹曰(동고위우왈) 欲得我山神書者(욕득아산신서자)면 齋於黃帝岩嶽之下(재어황제암악지하)하고
三月庚子(삼월경자)에 登山發石(등산발석)하면 金簡之書存矣(금간지서존의)리라 하거늘
현이 창수사자가 동쪽으로 고개를 돌려 우에게 말하였다. “우리 산신의 책을 얻으려면 모름지기 황제암악黃帝巖嶽 아래서 재계한 뒤에 3월 경자일에 다시 산꼭대기로 올라와 돌을 들춰 보면 금간金簡으로 된 책이 있으리라.”
禹退又齋(우퇴우재)하고 三月庚子(삼월경자)에 登宛委山(등완위산)하야
發金簡之書(발금간지서)하고 案金簡玉字(안금간옥자)하야 得通水之理(득통수지리)러라.
우는 물러나서 다시 재계하고 3월 경자일에 완위산에 올라가 금간으로 된 책을 찾았는데, 금간에 쓰인 옥 글자를 살펴보고 물길을 소통시키는 이치를 알게 되었다. (『오월춘추(吳越春秋)』권6 「월왕무여외전(越王無余外傳」)
及九年洪水(급구년홍수)하야 害及萬民故(해급만민고)로
9년 동안 홍수가 일어나 그 재앙이 만민에게 미치므로
檀君王儉(단군왕검)이 遣太子扶婁(견태자부루)하사 約與虞舜(역여우순)으로
招會于塗山(초회우도산)하실새
단군왕검께서 태자 부루를 보내 우나라 순임금舜과 약속하게 하시고, 도산 회의를 소집하셨다.
舜(순)이 遣司空禹(견사공우)하야 受我五行治水之法(수아오행치수지법)하고
而功乃成也(이공내성야)라
순임금이 사공司空 우禹를 보내어 우리의 오행치수법五行治水之法을 받아 치수에 성공하였다. (『태백일사』 「삼한관경본기」 <번한세가>)
그런데 두 기록을 비교해 보면, 분명 중국에 대홍수가 발생했고, 붕괴 직전의 왕조를 도운 창수사자를 만날 수 있다. 다시 말해 순임금의 명을 받고 치수 방안을 찾아 백마를 잡아 천제를 올리고도 방책을 얻지 못해 울부짖는 우禹 앞에 나타난 동방의 창수사자, 그의 도움 없이는 중원 왕조가 몰락할 위기에 처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지나支那는 동방 천자국 단군조선의 도움을 받은 것을 꿈으로 돌려놓았다. 이를 제대로 규명하지 않은 후대의 공자와 사마천을 비롯한 기록자들은 순임금이 동방 조선의 천자인 단군왕검과 부루 태자의 도움을 받았음을 의도적으로 누락시켰다. 이는 역사 기록자의 벗을 수 없는 멍에이자 원죄라 할 것이다.
둘째, ‘술이부작’이라 했지만 동방 조선을 폄하한 잘못된 기록도 남겼다
공자와 제자들의 기록인 『논어』를 보면 우리 스승님인 공자의 말씀은 한마디로 ‘술이부작述而不作 신이호고信而好古’라고 했다. 공자는 “정리해서 기록할 따름이지 새로운 것을 덧붙이고 만든 것이 아니며 옛것을 믿고 좋아했다.”는 말이다.
여기서 핵심은 공자가 믿고 좋아한 그 과거의 것, 옛 것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이는 앞서 살펴본, 요순의 도이며, 더 구체적으로는 요순의 도를 전해 준 단군조선의 도이다. 동방 천자국, 종주국의 천도를 배워 온 요순의 옛 가르침을 갈구한 것이다. 공자의 인仁 사상도, 동방 조선에 내려온 환국의 인仁사상, 경당扃堂의 오상지도五常之道에서 파생되었다.
그런데 우리가 『논어』 11편, 「선진」을 보면 공자가 문화의 종주인 동방 조선의 역사를 왜곡한 구절을 만날 수 있다.
子曰(자왈) 先進於禮樂(선진어예악)은 野人也(야인야)요
後進於禮樂(후진어예악)은 君子也(군자야)라 하나니
如用之(여용지)면 則吾從先進(즉오종선진)하리라
공자가 말하였다. “예악문화의 선진은 야인이요, 예악문화의 후진은 군자라 하나니, 만약 쓴다면 나는 선진(종주국)의 예와 악을 따르리라.”
(『논어』 「선진」)
공자는 예악문화의 고향인 선진문화를 야인野人이라 칭하고, 후진 문화를 군자의 도라 칭했다. 그러면서도 ‘오종선진吾從先進’, 자신은 야인의 예악문화를 따르리라 했다. 이 구절에 대해 해석이 분분하다. 공자는 ‘순박한 문화를 높이고 싶다’, ‘먼저 나온 원형문화를 높인다. 나는 그 원형 예악을 따르고 싶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그러나 공자는 자신의 뿌리인 은나라 문화, 그리고 그 이전의 우禹임금의 하夏나라와 요순堯舜의 역사를 제대로 복원해 내지 못했다. 나아가 요순문화의 핵심인 상제, 제천문화에 젖줄을 전해 준 배달과 단군조선의 문화까지 나아가지 못했다.
한마디로 선진은 야인이 아니라, 공자가 찾으려 한 동방 원형문화의 종주였던 단군조선 문화였다. 공자는 순임금과 우임금이 대홍수로부터 백성들을 구할 치수법을 전해 준 동방 조선의 선진문화를 야인으로 폄하한 것이다. 이것을 제대로 볼 필요가 있다.
논어 공자와 그 제자들의 대화를 기록한 책, 공자의 제자들과 그 문인들이 공동 편찬한 것으로 추정한다.
셋째, 춘추필법으로 동방 조선의 국호와 원 역사를 전하지 않았다
역사 기록자의 필법은 큰 문제를 낳는다. 기록자의 의도에 따라 역사는 크게 휘둘리게 된다. 그런데 공자에서 비롯된 춘추필법은 표면적으로는 대의명분을 내세우며 후세의 교훈을 주기 위함이라 주장한다. 정당한 역사 기록법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중국 중심으로 주변의 모든 민족의 문화를 폄하하며 자신들만 문명국가이며, 주변 국가의 역사는 야만의 역사, 오랑캐의 역사로 규정한 큰 잘못을 저질렀다.
이런 공자의 춘추필법에 따라 중국 사서는 중국에 영광스러운 일은 부풀리면서 중국에 수치스러운 일은 감추고〔위국휘치爲國諱恥〕, 중국은 높이면서 주변 나라는 깎아내리고〔존화양이尊華攘夷〕, 중국사는 상세히 쓰면서 이민족 역사는 간략하게 적어〔상내약외詳內略外〕왔다. 그 결과 동북아 문명의 주체였던 한민족의 역사는 중국 변방 오랑캐 족속의 하잘것없는 역사로 전락되고 말았다.
가장 큰 문제는 사람들 사이에도 이름을 불러주지 않고 별명이나 부르는 것은 예의가 아니듯이 국가 간의 정식 국호를 기록하지 않은 것이다. 분명 공자가 살았던 시대는 단군조선의 말엽이었다. 그런데도 요순의 역사를 찾고, 단군조선의 영향권에 있었던 하·은·주를 찾은 공자가 동방 천자국 조선의 역사를 기록하지 않은 것은 역사의 준엄한 평가를 받아야 할 것이다.
안운산 태상종도사님은 공자에 관해 아래와 같이 말씀하셨다.
공자가 본래 우리나라 사람이다. 공자 자신이 그랬다. ‘구야丘也 은인야殷人也라’(『예기』 단궁檀弓) 공자 이름이 구丘 아닌가. 자기 자신은 은나라 사람이라는 것이다.
은나라는 우리 동이족이 세운 나라다. 그러면서도 그 사람이 본래 우리 역사를 왜곡했다. 우리 조상들도 그분을 믿고 살았기 때문에 나는 나쁘게 규정짓고 싶지 않다. 그러나 도성덕립道成德立이 되면 그때는 사실대로 평가가 될 게다. (2017년 12월 《월간개벽》)
공자는 지금의 산동성 곡부 사람인데, 원래 우리나라 사람이다. 『가례家禮』라는 공자의 일기책이 있다. 거기에 보면, “구丘는 은인야殷人也라”라는 구절이 있다. ‘구는 은나라 사람’이란 뜻이다. 공자 이름이 구이고, 은나라는 바로 우리나라다. 그는 우리나라 사람이면서 우리나라를 배척해 버렸다. 참 묘한 사람이다. (1999년 11월 《증산도 문화소식》)
공자는 유교의 창시자로, 동방 문화를 대표하는 성인으로 추앙받고 있지만 우주의 법도로 뿌리를 찾아 가는 상제님의 원시반본原始反本의 도법으로 보면 하자가 있다는 말씀이다. 공자는 ‘우리나라 사람(은나라, 동이족 혈통)이면서도 우리나라(동방 조선)를 배척해 버렸다. 참 묘한 사람이다’, ‘그 사람이 본래 우리 역사를 왜곡했다’라고 하셨다.
한마디로 공자는 천자문화의 고향, 하늘 가르침을 편 부루 태자가 9년 홍수 때 전한 경당扃堂문화의 원형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하·상·주 3왕조의 문화 고향인 단군조선의 역사를 제대로 기록해 전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공자는 노년에 뗏목을 타고 동방 바다로 가고 싶어 했다. ‘군자가 살았던 구이에 가서 살고 싶다’고 하며, 동방 조선의 선진문화를 동경했던 것이다.
춘추필법#春秋筆法의 주요 내용
위국휘치爲國諱恥 - 중국에 영광스러운 일은 부풀리면서 중국에 수치스러운 일은 감춘다
존화양이尊華攘夷 - 중국은 높이면서 주변 나라는 깎아내린다
상내약외詳內略外 - 중국사는 상세히 쓰면서 이민족 역사는 간략하게 적는다
공자의 고백: ‘나는 뗏목을 타고 바다로 가고 싶다. 구이에 가서 살고 싶다’
子曰(자왈) 道不行(도불행) 乘桴浮於海(승부부어해) 從我者其由與(종아자기유여)
공자께서 “도가 행해지지 않아서 뗏목을 타고 바다로 나간다면 나를 따라갈 사람은 아마 유이리라.”라고 말씀하시자
子路聞之喜(자로문지희) 子曰(자왈) 由也好勇過我(유야호용과아) 無所取材(무소취재)
자로가 이 말을 듣고 기뻐하였다. 이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유는 용맹을 좋아함이 나를 능가하건만 뗏목 만들 목재를 구할 데가 없다.”
(『논어』 「공야장」 )
子欲居九夷(자욕거구이) 或曰(혹왈) 陋(루) 如之何(여지하) 子曰(자왈) 君子居之(군자거지) 何陋之有(하루지유)
공자께서 여러 동쪽 오랑캐의 나라에 살고 싶어 하시자 어떤 사람이 “거기는 누추할 터인데 그것을 어떻게 하시겠습니까?”라고 말했다. 이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가 살았는데 무슨 누추함이 있겠느냐?” (『논어』 「자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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