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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선18

<역사왜곡>사마천이 왜곡한 동방 역사의 진실? 사마천이 왜곡한 동방 역사의 진실? 사마천이 왜곡한 동방 역사의 진실? 치우작란蚩尤作亂인가? 황제작란黃帝作亂인가? 『사기』 주석인 집해를 보면 ‘치우는 옛 천자다’라는 글이 나온다. 치우는 단순 제후가 아닌 옛 천자였다는 것이다. 集解應劭曰(집해응소왈) 蚩尤古天子(치우고천자) 그리고 『환단고기』 「삼성기」를 보면 헌원이 난을 일으켰고, 치우천황께서 제압을 해서 신하로 삼았음을 전하고 있다. 又數傳而有慈烏支桓雄(우수전이유자오지환웅)하시니 神勇冠絶(신용관절)하사 다시 몇 세를 내려와 14세 자오지 환웅이 계셨는데, 이분은 신이한 용맹이 매우 뛰어났다. (중략) 蚩尤天王(치우천왕)이 見炎農之衰(견염농지쇠)하시고 遂抱雄圖(수포웅도)하사 屢起天兵於西(누기천병어서)하시고 치우천황께서 염제신농의 나라가 날로 쇠약해지.. 2022. 4. 17.
<환단고기>삼성기는 왜 없어져야 할 책이 되었나? 삼성기는 왜 없어져야 할 책이 되었나?삼성기는 왜 없어져야 할 책이 되었나? ◀북경 군사박물관에 걸린 진시황제 병마용 사진. 북경 지하철 1호선에 군사박물관역(쥔스보우관잔)이 있다. 중국을 통일한 진시황제는 정보통제를 위해 책들을 불태우고 지식인들을 매장했다. 이것을 분서갱유(焚書坑儒)라 한다. 법가주의 통치이념을 택한 그는, 제국 경영을 저해하는 것들을 이런 방식으로 탄압했다. 이런 식으로 수많은 책들이 사라졌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고대 중국의 이미지는 실은 완전한 것이 아니다. 어쩌면 그것은 참모습과 완전히 동떨어진 것일 수도 있다. 그런 책들이 온전히 복원된다면, 중국사를 원점에서부터 다시 써야 할 필요성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물론 인간이 기록을 없애버린다 하여, 역사 복원의 가능성.. 2020. 7. 8.
<환단고기>환단고기,우리역사의 진실 환단고기,우리역사의 진실환단고기,우리역사의 진실 일본이 무수히 많은 책자를 없애기 전까지만해도 우리 고유의 역사서들은 많이 볼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무려 20만권이상을 일본이 소각해 버려서 지금 그런 사서들이 아주 귀하게 되어버렸습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으로 소장해오던 책이 전해진것이 있습니다. 북애노인의 규원사화, 계연수의 환단고기, 일연의 삼국유사, 고조선기 등이 있습니다. 삼국유사는 이미 불교의 안목으로 윤색되어 시원역사의 전모를 제대로 보기는 힘듭니다. 하지만 우리역사의 진실을 볼 수 있는 내용이 남아 있기때문에 뿌리사를 찾는 소중한 자료라고 할수있겠습니다. 환단고기는 독립운동가 계연수가 안함로와 원동중의 삼성기, 행촌 이암의 단군세기, 범장의 북부여기, 이맥의 태백일사 등을 한권으로 엮어 .. 2020. 7. 6.
<고두막한>고조선,북부여,한사군 고조선,북부여,한사군 고조선,북부여,한사군 고조선은 본래 초대 단군왕검께서 나라를 진한, 번한, 마한이라는 삼한으로 나누어 다스렸다. 진한은 북만주, 마한은 한반도, 번한은 요동, 요서, 하북성, 산동성, 절강성까지 포함하는 중국 대륙 동부 지역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삼한은 나중에 삼조선으로 관제가 변경이 되었기 때문에 진한은 진조선, 번한은 번조선, 마한은 막조선이 되었다. 단재 신채호도 『조선상고사』에서 삼조선을 말하고 있다. 한편 해모수 단군이 붕어하던 서기전 195년에 연나라 사람 위만이 번조선의 기준왕에게 망명을 요청하였다. 준왕은 위만에게 연나라와의 접경 지대인 서쪽 변방의 국경수비대 임무를 맡겼으나, 위만은 그 은혜를 배반하고 1년 뒤에 준왕의 왕험성으로 쳐들어와서 나라를 강탈하였다. .. 2019. 6. 17.
<환단고기>기자조선과 위만조선의 허구 기자조선과 위만조선의 허구 기자조선과 위만조선의 허구 과연 한국사의 실제적 기원은 중국의 식민지로부터 시작되었는가? 한국의 주류사학의 주장은 단군조선은 신화이기 때문에 실제적 한국사의 시작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런 역사의식 때문에 ‘고조선은 단군이 건국하였다고 한다’라고 하여 남의 이야기를 전하듯이 기술을 한 것입니다. 따라서 단군 신화시대를 거쳐서 실제적 한국사 기원은 주나라에서 조선후(朝鮮候)로 임명한 기자(箕子)로부터 출발하였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중국이 자행한 또 다른 한민족사 왜곡인 기자箕子조선설입니다. 문화를 전해준 스승국이자 천자국(天子國)인 단군조선을 지워버리고 신하국가로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하나라, 상(은)나라를 이은 주나라가 건국되던 때인 지금부터 약 3,100년 전, ‘주나라 무.. 2019. 4. 29.
<천지공사>문왕의 도수(대두목이 걷는 창업의 고난) 문왕의 도수(대두목이 걷는 창업의 고난) 문왕의 도수(대두목이 걷는 창업의 고난) 대두목이 받는 실질적인 역사의 정신으로 가장 중요한 도수가 문왕의 도수이다. 상제님께서 일찍이 문공신 성도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다. ●상제님께서 공신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너에게 정음정양 도수를 붙이나니 네가 온전히 잘 이기어 받겠느냐. 정심으로 잘 수련하라. 또 문왕(文王) 도수가 있으니 그 도수를 맡으려면 극히 어려우리라(도전5:207) 일반적으로 중국의 하(夏,하)나라, 상(商,상)나라, 주(周,저우)나라를 중국의 고대 3왕조라 한다. 상나라는 본래 초대임금(成湯)이 하남성(河南省)인 상구현(商邱縣)에 자리를 잡아 상(商)나라라 했는데 [초기 도읍지로 안휘성(安徽省) 박현(毫縣)으로도 본다], 19대 반경(盤庚)에 .. 2019. 4. 3.
<고구려>북부여를 계승한 고구려 북부여를 계승한 고구려 북부여를 계승한 고구려 북부여를 계승한 고구려 북부여는 비록 고조선을 계승하였지만, 고조선의 전 영역을 흡수하지는 못하였다. 그리하여 열국列國의 분열시대가 시작되어 고조선의 옛 영토에는 북부여, 동부여, 서부여, 낙랑국, 남삼한, 옥저, 동예 등의 여러 나라가 형성되었다. 열국시대는 그 후 사국시대(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를 거쳐 삼국시대(고구려, 백제, 신라)로 변화하였다. 그렇다면 북부여의 국통은 어디로 계승되었는가? 고주몽이 세운 고구려로 계승되었다. 북부여의 고무서단군은 자신을“ 천제의 아들(天帝子)”이라고 밝히는 주몽을 범상치 않은 인물로 여겨 둘째 딸인 소서노를 주어 사위로 삼았다. 아들이 없던 단군은 재위 2년 만에 붕어하면서 그에게 대통을 물려주었다(BCE 58.. 2017. 11. 3.
<북부여>북부여의 구국 영웅,고두막한-동명왕 북부여의 구국 영웅,고두막한-동명왕 북부여의 구국 영웅,고두막한-동명왕 북부여는 4세 단군에 이르러 역사적인 큰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BCE 109년, 한 무제가 위만의 손자인 우거왕이 다스리던 위만조선으로 쳐들어왔다. 한나라는 초기에 연신 패하였으나 이간책으로 위만정권 지도층을 분열시켜 결국 우거를 죽이고 왕검성을 점령하였다(BCE 108). 이때 한 무제는 새로운 점령지에‘ 한나라의 군현[漢四郡]’을 설치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우거 제거에 공을 세운 한민족의 강한 저항에 부딪쳐 고조선 유민들의 자치를 인정하는 데 그쳐야 했다. 위만정권을 무너뜨린 한 무제는 요동을 넘어 북부여까지 침공하였다. 그런데 당시 북부여의 4세 고우루단군은 워낙 심성이 유약하여 제대로 싸우지도 못하고 도중에 병사하고 말았다.. 2017. 8. 25.
<북부여와 남삼한>북쪽에는 북부여, 남쪽에는 남삼한 북쪽에는 북부여, 남쪽에는 남삼한 북쪽에는 북부여, 남쪽에는 남삼한 준왕이 망하고 위만정권이 들어선 사건은 한민족에게 또 다른 역사 개척의 계기가 되었다. 번조선 땅이 위만에게 강탈당하자 상장군 탁卓이 사람들을 이끌고 한강 이남으로 이주하여 새로이‘ 마한’을 세웠다(BCE 194). 옛 진조선과 막조선의 일부 백성들도 한강 아래로 남하하여 각기‘ 진한’과‘ 변한’을 세웠다. 마한은 호남의 익산을, 진한은 경북 경주를, 변한은 경남 김해를 중심으로 하여 형성되었다. 비록 불의한 위만정권 때문에 남하한 것이지만, 한강 이남에서 새로운 삼한시대를 연 것이다. 단재 신채호는‘전후삼한설前後三韓說’을 주창하여 한반도에 형성된 삼한을‘ 후삼한(남삼한)’이라 부르면서, 고조선 시대의‘ 전삼한(북삼한)’과 구별하였다. .. 2017. 8. 24.
<북부여>북부여의 건국,해모수 북부여의 건국,해모수 북부여의 건국,해모수 대단군의 통치권이 약화되고 부단군과 지방 군장들의 목소리가 커지던 고조선 말기에 한민족의 새 역사를 개창한 분이 바로 북부여를 건국한 해모수이다. 해모수는 요하 상류에 위치한 고조선의 제후국인 고리국 출신으로 BCE 239년 웅심산(지금의 길림성 서란)에서 기두하였다. 그 후 백악산 아사달을 점거하고, 당시 고열가 단군의 빈자리를 대신하고 있던 오가五加 부족장들의 공화정을 철폐하였다. 이에 백성들이 해모수를 단군으로 추대함으로써, 북부여의 역사가 시작되었다(BCE 232). ‘북부여’는‘ 북쪽에 있는 부여’라는 뜻이다. 고조선의 제3왕조 시대인 대부여의 북녘 땅을 중심으로 나라를 열었기 때문에,‘ 대’자를‘ 북’자로 바꾸어 북부여라 한 것이다. 그것은 망해 가던.. 2017. 8. 23.
<역사왜곡>한사군의 한반도 내 위치설은 식민사관 잔재 한사군의 한반도 내 위치설은 식민사관 잔재 한사군의 한반도 내 위치설은 식민사관 잔재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 주장 한국사에서 가장 논란거리 중 하나는 한(漢)나라가 고조선을 멸망시키고 설치했다는 한사군(漢四郡)의 위치에 대한 것이다. 한사군의 핵심이었던 낙랑군에 대해 주류 사학계는 한반도에 있었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만주 서쪽(요동)에 자리하고 있었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은 지난달 30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침략(식민)사관 재등장의 역사적 구조'를 주제로 열린 세미나에서 '한사군의 한반도 내 위치설'은 식민사관을 해방 후에도 정설로 받아들인 결과라고 주장했다. 이 소장은 "일제는 대한제국 강점 직후 중추원 산하에 '조선반도사편찬위원회'를 만들고 3·1운동 이후에는 총독.. 2017. 7. 10.
<환단고기 북콘서트>삼국유사 고조선기에 기록된 한국 역사와 문화의 출발점 삼국유사 고조선기에 기록된 한국 역사와 문화의 출발점 삼국유사 고조선기에 기록된 한국 역사와 문화의 출발점 삼국유사 고조선기에 기록된 한국 역사와 문화의 출발점 그렇다면 우리 조국, 한국의 역사와 문화는 어디서부터인가? 단군은 신화이고 실제 역사는 3천년 이상을 넘을 수 없다! 이것은 고고학적 입장입니다. 근대 과학주의 역사학의 고향이 바로 이 독일입니다. 이 실증사학, 고고학은 진실로 위대한 면이 있지만 인류 정신사의 뿌리를 다 말살해 버렸습니다. 자, 이제 우리 한민족이 가지고 있는 사서를 통해 ‘동방문화의 본래의 주인공, 우리 한국의 창세 역사와 시원 문화는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이냐?’ 이것을 살펴보겠어요. 강화도 불평등조약 이후로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한민족 800만 명을 학살하고 한국의 문화와 역.. 2017. 3.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