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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선18

<북부여>잃어버린 역사 북부여-환단고기 잃어버린 역사 북부여-환단고기 잃어버린 역사 북부여-환단고기 북부여의 건국,해모수 단군 대단군의 통치권이 약화되고 부단군과 지방 군장들의 목소리가 커지던 고조선 말기에 한민족의 새 역사를 개창한 분이 바로 북부여를 건국한 해모수이다. 해모수는 요하 상류에 위치한 고조선의 제후국인 고리국 출신으로 BCE 239년 웅심산(지금의 길림성 서란)에서 기두하였다. 그 후 백악산 아사달을 점거하고, 당시 고열가 단군의 빈자리를 대신하고 있던 오가五加 부족장들의 공화정을 철폐하였다. 이에 백성들이 해모수를 단군으로 추대함으로써, 북부여의 역사가 시작되었다(BCE 232). ‘북부여’는‘ 북쪽에 있는 부여’라는 뜻이다. 고조선의 제3왕조 시대인 대부여의 북녘 땅을 중심으로 나라를 열었기 때문에,‘ 대’자를‘ 북’자로 .. 2017. 3. 22.
<단군조선>고조선,삼한관경의 와해와 쇠망 고조선,삼한관경의 와해와 쇠망 고조선,삼한관경의 와해와 쇠망 고조선,삼한관경의 와해 동북아의 천자 나라로 발전을 거듭하던 고조선은 21세 소태단군 말기 무렵, 개국 이후 첫 번째 국가 위기상황을 맞이하였다. 국가 운영의 근간인 삼한관경제가 큰 타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상나라 정벌에 공을 세운 개사원 지역의 욕살褥薩(지방장관) 고등高登과 해성 욕살 서우여徐于餘의 권력투쟁이 그 발단이었다. 순행 길에 옥좌 이양 의사를 밝힌 단군은 서우여에게 제위를 넘기고자 하였다. 그러나 고등의 손자 색불루索弗婁가 군사를 일으켜 스스로 보위에 오르는 바람에 어쩔 수없이 색불루에게 국새를 넘겨주었다. 이에 서우여가 마한, 번한의 군대와 연합하여 색불루에게 강력히 저항하면서 삼한의 군대가 서로 싸우는 내전이 발발하였다. 다행히.. 2017. 3. 17.
<단군조선>고조선의 찬란한 문화,단군조선 고조선의 찬란한 문화,단군조선 고조선의 찬란한 문화,단군조선 찬란한 청동기 문명을 꽃피운 고조선 현재 한국의 주류 사학계는 한국의 청동기 시대가 기껏해야 BCE 1300년을 거슬러 올라가지 못한다고 본다.68) 그러나 고조선은 나라가 막 세워진 BCE 24세기에 벌써 고도의 청동기 문명을 꽃피운 나라이다. 주류 사학계의 논리에 의하면 청동기 시대 이전인 BCE 2333년에는 국가가 있을 수 없다. 청동기 단계에 이르러야 고대 국가가 출현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청동기가 고대국가 성립의 필요조건은 아니다. 중남미의 경우 청동기가 등장하기 이전 석기만 사용하면서도 고대국가를 건설하였고, 4천5백 년 전에 이루어진 고대 이집트 왕조도 청동기 문명에 기초하여 성립된 것이 아니었다. 후기 베다시대(B.. 2017. 3. 9.
<단군조선>한민족의 전성기 고조선 한민족의 전성기 고조선 한민족의 전성기 고조선 단군왕검이 건국한 고조선 초대 환웅이 배달을 개국한 지 1,500여 년, 18세 환웅에 이르러 배달은 그 역사의 막을 내리게 된다. 말기의 쇠한 국운을 보여주듯, 마지막 세 환웅은 역대 천황의 평균 수명에 못 미치는 짧은 생을 살았다.52) 특히 18세 거불단환웅은 82세로 가장 단명하였다. 이러한 사실은 당시 배달 내부의 정치 상황과 동북아 정세가 매우 혼란스러웠음을 짐작하게 한다. 거불단 환웅이 세상을 떠나고, 14세에 비왕裨王으로 임명되어 24년간 제왕 수업을 받은 단군왕검이 천제의 아들로 추대되어 제위에 올랐다. 단군왕검은 배달 말기의 혼란을 잠재우고 9환족 전체를 하나로 통일하여 새로이 조선朝鮮이라는 나라를 열었다(BCE 2333). 단군왕검은 삼신.. 2017. 3. 7.
<삼국유사 고조선기>삼국유사 고조선기에 기록된 한국 역사와 문화의 출발점-석유환국 삼국유사 고조선기에 기록된 한국 역사와 문화의 출발점-석유환국 삼국유사 고조선기에 기록된 한국 역사와 문화의 출발점-석유환국 그렇다면 우리 조국, 한국의 역사와 문화는 어디서부터인가? 단군은 신화이고 실제 역사는 3천년 이상을 넘을 수 없다! 이것은 고고학적 입장입니다. 근대 과학주의 역사학의 고향이 바로 이 독일입니다. 이 실증사학, 고고학은 진실로 위대한 면이 있지만 인류 정신사의 뿌리를 다 말살해 버렸습니다. 자, 이제 우리 한민족이 가지고 있는 사서를 통해 ‘동방문화의 본래의 주인공, 우리 한국의 창세 역사와 시원 문화는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이냐?’ 이것을 살펴보겠어요. 강화도 불평등조약 이후로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한민족 800만 명을 학살하고 한국의 문화와 역사가 담긴 20만 권의 책을 남산에서.. 2017. 2. 15.
<식민사관>살아 있는 식민사관 유산,역사왜곡-동북아역사재단 살아 있는 식민사관 유산,역사왜곡-동북아역사재단 살아 있는 식민사관 유산,역사왜곡 다시 한 번 각성을 해서 우리 한민족 역사의 출발점을 돌아보면, ‘서력전 2333년에 단군이 아사달에 조선이라는 나라를 세웠다.’는 것입니다. 이것도 해방 후 한민족 사학자들이 50년 이상 투쟁을 하고, 또 지금 내몽골에 있는 하가점 유적지에서 단군조선 시대 유물이 나오니까 부정할 수 없어서 역사 교과서에 단 한 줄을 넣어준 겁니다. 그렇지만 아직도 ‘단군왕검이 조선을 세웠다고 한다.’고 기술한 교과서가 있어요. 얼마 전 수원에서 중고교 교사들이 학생들을 가르치려고 조그만 역사 학습서를 만들었는데, 거기에 ‘고조선의 문화는 사실이고 이러이러한 역사과정을 거쳤다.’고 썼습니다. 그러자 대한민국 정부를 대변하는 동북아재단 학자.. 2017. 2.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