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성황후 시해1 <을미사변>을미사변,조선의 국모 명성황후 시해사건-을미사변 을미사변,조선의 국모 명성황후 시해사건-을미사변 을미사변,조선의 국모 명성황후 시해사건-을미사변 을미사변(1895년) 하루는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조선은 원래 일본을 지도하던 선생국이었나니 배은망덕(背恩忘德)은 신도(神道)에서 허락하지 않으므로 저희들에게 일시의 영유(領有)는 될지언정 영원히 영유하지는 못하리라.” 하시니라. -도전 5편 118장 작전명 ‘여우사냥’이 시작됐다. 1895년 10월8일(음력 8월20일) 새벽 5시경 광화문 앞에 일단의 일본인 낭인浪人들이 일본군 수비대, 조선 훈련대와 함께 도착했다. 이들은 이미 새벽 3시경 공덕리孔德里의 별장(아소정我笑亭)에 유폐되어 있던 대원군을 강제로 끌어내어 궁으로 향했다. 대원군과 훈련대를 끌어들인 것은 향후 사건을 조선인들에 의한 반란으로 조작.. 2019. 6. 24.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