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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이야기/잊혀진 역사

<치우천황>치우천황은 삼묘족의 조상

by 이세덕 2023. 10. 4.

<치우천황>치우천황은 삼묘족의 조상

<치우천황>치우천황은 삼묘족의 조상

 

중국에서는 치우蚩尤를 묘족苗族의 조상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중국 역사서에 따르면, ‘치우가 탁록대전에서 헌원에게 패한 후 묘족 대부분이 남쪽 장강長江과 회수淮水 유역으로 이동하여 삼묘三苗를 형성했고, 후에 다시 요堯·순舜·우禹 등에 의해 쫓겨났다’고 한다.

그러나 『산해경山海經』 등의 기록은 이와 다르다. 당시 양자강 이남의 동정호洞庭湖와 팽려호彭蠡湖 일대에는 구려九黎의 후예인 ‘유묘有苗’ 혹은 ‘삼묘三苗’라 불리는 부족이 있었는데 요임금의 아들 단주丹朱와 사이가 매우 가까웠다. 요임금이 순에게 제위를 넘겨주려 하자 이 소식을 듣고 승복하지 않던 삼묘의 족장이, 단주가 오자 곧바로 세력을 연합하여 요에게 반기를 들었다. 그러나 요의 군대는 단주와 삼묘의 연합군을 궤멸시켰고, 이 싸움에서 삼묘 족장이 피살당하고 단주도 전사하였다. 이것이 묘족이 남쪽으로 옮겨 가게 된 배경이라고 했다(이재석, 『인류원한의 뿌리 단주』, 33~34쪽).

『회남자』 권11 제속훈에는 “묘족은 머리채를 삼끈으로 묶은 상투쟁이로서 마치 싹이 돋은 듯하여 묘苗라 했다.”라는 구절과 『산해경』 권17 대황북경에 “서북해 밖 흑수 북쪽에 날개 달린 사람(鳥夷系)이 있으니 이름하여 묘민苗民이다.”란 기록에 비추면 이夷족이면서 머리에 상투를 튼 민족이다. 그리고 왕동령王桐齡의 『중국민족사』에는 “삼묘족三苗族의 나라를 구려九黎라 하고 구려의 임금을 치우라 한다.”라는 구절이 있다. 즉, 묘족은 우리와 공통의 조상을 가진 민족이라고 할 수 있겠다. 또한 오히려 묘족이 있던 영역까지 배달국의 영역이었다고 추정해 볼 수도 있다, 국내 역사학계에서는 치우를 그저 남방 삼묘족의 족장으로만 본다. 다시 말해서 구려九黎의 군장이 치우이고, 묘족은 태호복희씨와 치우천황을 조상으로 섬겨 온 동방족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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