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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탐험/우주섭리 개벽

<제1차 세계대전>애기판 씨름의 역사적 의의

by 이세덕 2023. 11. 3.

<제1차 세계대전>애기판 씨름의 역사적 의의

<제1차 세계대전>애기판 씨름의 역사적 의의


이제까지 우리는 천상 조화정부에 있는 한민족의 보호성신들이 자손 곁을 떠나 지상에서 세계 역사를 선도해 가는 면모를 살펴볼 수 있었다. 애기판 씨름으로 제1차 세계대전이 유럽 전역에서 불붙음으로써 침략욕에 불타던 서양 제국주의 세력이 동양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주춤하게 되었다.

전쟁이 끝나고 진행된 강화회의에서 미국의 윌슨Thomas W. Wilson 대통령이 제창한 14개 조항의 평화 원칙이 적용되었다. 윌슨의 민족자결주의民族自決主義는 전쟁 후 발칸반도 및 동유럽의 패전국들이 식민지를 내놓고, 승리한 영국과 프랑스가 패전국의 식민지를 차지하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이었다.

따라서 윌슨의 선언은 패전국 영토에 귀속된 소수의 민족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지 승전국의 식민지에는 전혀 적용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를 오해한 우리나라에서는 1919년 3.1 독립운동이 일어났다(일본은 이때 승전국의 일원이었다). 이는 인도, 중국, 서남아시아 등지에서 일어난 반제국주의 운동의 효시였다.

유럽과 중동에서 일부 제국이 몰락하고 많은 약소국이 독립함으로써 제1차 세계대전은 동서양의 세력 균형을 이루는 첫 손길로 작용하였다. 영국 등 유럽 제국은 기세가 한풀 꺾이고, 오스만튀르크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해체되었다. 독일 제국은 빌헬름 2세가 퇴위하고 바이마르 공화국이 들어섰고, 러시아는 공산 혁명으로 무너졌다. 반면 인권과 민주주의를 세계에 뿌리내린다는 ‘자유 이념’을 들고나온 미국은 군사 강국으로 자리를 잡았고, 일본도 많은 이익을 챙기며 신생 제국으로서 위상을 확고히 했다.

애기판 씨름의 결과 동양 여러 나라는 구시대적 가치관에서 벗어나 훗날의 번영을 기약하는 초석을 마련하였다. 아울러 상제님의 ‘세계일가 통일정권 공사’에 따라 천상 조화정부가 지상에 발현되기 시작하였다. 전쟁 처리를 위해 베르사유 조약을 체결하면서 국제 분쟁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노력의 결과로 국제연맹國際聯盟(League of Nations, 1920년 42개 회원국으로 출범)이 1920년 스위스 제네바에서 창설되었다. 이로써 세계 평화를 정착하기 위한 기구가 설립되어 역사 속에 세계 통일의 첫걸음을 내딛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