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차경석2

<태모 고수부님>제1변 판 안의 난법기운을 거두는 마무리 도수 제1변 판 안의 난법기운을 거두는 마무리 도수 제1변 판 안의 난법기운을 거두는 마무리 도수 ☯태모 고수부님의 셋째살림 준비 태모 고수부님은 동생 차경석 성도와 싸울 수 없어 원평으로 가려고 하시다가, 결국 김제 백산면 조종골로 가셨다. 조종골에서 13년 동안(戊午1918 ~辛未1931) 도무집행을 하셨고 신미(辛未,1931)년에 용화동으로 이사하셨다. 이것이 바로 세번째 교단 살림인 조종골 교단과 동화교의 통합교단이다. 당시 동화교 창교의 주인공인 이상호 이정립 형제가 보천교를 거쳐서 나왔다는 사실에는 아주 재미있는 역사적 의미가 담겨 있다. 이들은 동학혁명때 죽은 수만 명의 역신들을 해원시키는 대공사, 차경석 성도의 보천교에 들어가 조직생활을 하면서 월곡선생과의 대화를 통해 상제님의 말씀을 전해 듣기.. 2019. 4. 18.
<보천교>보천교 독립운동사 증언 (차경석 성도님 아들 차용남) 보천교 독립운동사 증언 (차경석 성도님 아들 차용남) 보천교 독립운동사 증언 (차경석 성도님 아들 차용남) 차경석은 일제 식민지 통치 아래에서 신흥종교 보천교를 창건했다. 그리하여 세인의 입에 오르내렸고 일제의 탄압도 따랐다. 보천교에 대해 묻자, 용남(차경석 성도님의 아들 차용남)은 신중하면서 긴장하는 듯 했다. 그리고 용남의 달변과 조리있는 대답은 이러했다. "왜정 때, 자기(총독부)들이 발표한 것이 육백만입니다. 그때 우리나라 동포를 천 팔백만 인구라고 했지요. 교종이라고 교에서 종을 지은 것이 있어요. 종각이 있어서 삼시로 종을 치고 그랬는데, 그 종이 우리나라에서 제일 컸어요. 그런데 경주 봉덕종이 크고, 서울 보신각에 종이 더 크다고 하지만은, 보천교 종은 우리나라 제일 큰 종인데, 저 산이 .. 2017. 9.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