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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산도는/증산도가 뭐예요?

<태모 고수부님>제1변 판 안의 난법기운을 거두는 마무리 도수

by 이세덕 2019. 4. 18.

<태모 고수부님>제1변 판 안의 난법기운을 거두는 마무리 도수
<태모 고수부님>제1변 판 안의 난법기운을 거두는 마무리 도수

 

☯태모 고수부님의 셋째살림 준비
태모 고수부님은 동생 차경석 성도와 싸울 수 없어 원평으로 가려고 하시다가, 결국 김제 백산면 조종골로 가셨다. 조종골에서 13년 동안(戊午1918 ~辛未1931) 도무집행을 하셨고 신미(辛未,1931)년에 용화동으로 이사하셨다.

이것이 바로 세번째 교단 살림인 조종골 교단과 동화교의 통합교단이다. 당시 동화교 창교의 주인공인 이상호 이정립 형제가 보천교를 거쳐서 나왔다는 사실에는 아주 재미있는 역사적 의미가 담겨 있다. 이들은 동학혁명때 죽은 수만 명의 역신들을 해원시키는 대공사, 차경석 성도의 보천교에 들어가 조직생활을 하면서 월곡선생과의 대화를 통해 상제님의 말씀을 전해 듣기도 하고, 뒤에 두 형제는 보천교에서 뛰쳐나와 김형렬 성도의 교단에 들어가서 김형렬 성도로 부터도 상제님의 말씀을 듣고 이를 정리해 펴낸 것이 병인(丙寅,1926)년에 간행된《증산천사공사기(甑山天師公事記)》이다.



그 뒤 그들은 계속 성도들을 만나 상제님 말씀을 더욱 널리 조직적으로 전해 듣고 용화동에서 동녁 동(東)자, 빛날 화(華)자의 동화교(東華敎)라는 판을 열었다. 그리고 태모 고수부님에게 접근하여 자산들의 종통의 근거를 마련하고자 하였다. 이상호 이정립 형제는 고수부님에게 달려가서 “상제님께서 세 살림을 말씀하셨는데, 이제 그 도수가 된 듯 하옵니다” 하는 말씀을 드리며 용화동으로 모시기를 간곡히 주청을 하였다. 그런데 이상호 형제가 어떻게 해서〈세 살림〉의 도수 내용을 알았을까? 상제님의 성도들의 증언을 모아 책을 썼기 때문이다. 상제님 말씀 수집을 하는 과정에서 종통이 태모님께 전수된 것을 명확히 알았기 때문에 태모 고수부님을 찾아간 것이다

이에 고수부님이 제자들의 간청도 있고 하여 “네 말이 옳다”고 하시면서 신미(辛未, 1931)년에 용화동으로 가셔서 조종골에 있는 선도교와 용화동에 있는 동화교를 하나의 통합교단으로 하여, 상제님 탄신 60주년이 되는 신미(辛未,1931)년 9월 19일(음력) 성탄치성절에 고수부님이 셋째살림 교단의 교주로 취임하셨다. 이것이 바로 아홉번 째에 해당하는 판 안의 난법 판의 말수도수이다. 이것은 판 안 난법의 과정을 마무리 짓는 대단히 중요한 사건이다. 1변의 난법도수가 마지막으로 어떻게 해소되면서 제2변 교운시대로 넘어갔는가? 이 문제는 참으로 중요한 것이다. 이 통합교단이 바로 마지막 아홉(9) 번째인 데, 그 곳의 교주가 바로 고수부님이신 것이다.

결국 상제님이 뿌리신 10개 교단 가운데 첫 번째 한 마디인 두목 고수부님이 진법의 씨를 뿌리고, 차경석 성도로 하여금 판을 옮겨 심는 과정에서 도운의 판 안의 난법 분열시대가 열리게 된다.(역사정신이 성숙하지 못한 성도들의 욕망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다시 고수부님이 1변 도운의 난법 분열 판의 마지막 자리에 와서 종통대권자로 1변 난법 분열시대를 진법으로 통합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도사(道史)의 도통(道通)맥을 보는 핵심 문제가 바로 이것이다. 도운사에서 판 안의 교단의 분열사는 태모님을 뿌리로 해서 진법이든 난법이든 분열되어 나가게 되었다.

●以惡充者(이악충자)도 成功(성공)하고 以善充者(이선충자)도 成功(성공하니라.
☞악으로 채우는 자도 성공(자기 충족)하고 선으로 채우는 자도 성공(자기 충족)하느니라.(도전6:133)
진법에서 난법이 분열 돼 나오는 근본적 이유는 성도들의 심법의 문제다. 심법이 바르면 진법판을 열고 그렇지 못하면 난법판을 열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심법이 종통이다. 참법과 난법은 동전의 앞뒤와 같다.그  뿌리는 하나, 바로 고수부님이다. 역사의 선악은 일체이다. 천지의 조화 속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물의 양면성의 이치(태극정신)를 볼 줄 알아야 한다. 차경석 성도가 자신의 이종누님인 고수부님이 개창한 대흥리의 판을 움켜쥐고 사람들을 못 만나게 하면서부터 성도들이 욕심과 격분을 참지 못해 각기 뛰쳐나가는 과정이 바로 난법의 8개 교단이 생성되는 인사 전개의 동기이자 또한 시발점이다. 차경석 성도가 난법 도운 분열사의 중심에 있었던 것은 종통계승자인 고수부님을 몰아내고 교권을 장악하려는 야심 때문이었다. 이 과정에서 상제님의 성도님들은 차경석 성도의 배짱을 간파하고 그들 나름대로 괘씸하게 생각되어 각자 교단을 열기 시작한 것이다. 태모 고수부님은 1변 분열 도운의 마지막 끝수(9) 자리에 들어앉아 판 안의 성도들의 난법시대를 마무리 지으시고, 계유(癸酉, 1933)년에 임피 오성산(五聖山)으로 떠난 2년 후인 을해(乙亥,1935)년에 56세로 선화(仙化)하셨다. 이어 다음 해(丙子,1936)에 난법교 운의 주역자인 동생 월곡 차경석 성도도 세상을 떠나며 1변 도운이 마무리된다.

 

☯고수부님께서 용화동으로 가신 이유

고수부님이 마지막에 옮겨 앉으신 아홉번 째의 교단은, 해방 후 제 2변 도운의 부흥시대가 일어날 중심자리로 옮겨 미리 터를 닦고 도운(道運)의 정통성을 부여해 주신 것이다. 고수부님이 도통을 하시고 “추수할 인물이 다시 나온다”고 하신 말씀이 예고해 주듯, 고수부님은 이미 도통을 해서 새 지도자가 출세하는 인사문제를 다 보고 계셨던 것이다. 그러나 여자이기 때문에 자기 동생이 까불고 달려들어도 어찌 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것이 선천 난법 역사의 인간사가 아닌가! 한 번은 태모 고수부님께서 냉혹하게 자기 동생을 혼 구멍을 낸 적도 있었다. 고수부님이 도통을 받으시고 나서 마당에서 부(符)를 받고 청수 모시고 신명공사를 보시는데, 차경석 성도가 “상제님은 부인만 알고 제자는 모르신다”고 불평을 하자, 고수부님이 동생 차경석 성도에게 “그러면 너도 한번 받아보아라” 하셨다. 그러나 아무것도 내리지 않았다. 이 한 가지 사실을 보아도 고수부님은 상제님이 대권을 전수하신 참법의 뿌리임을 새삼스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상제님은 수부에게 수부도수로 진법의 씨를 뿌리고, 차경석 성도에 의해 난법 도운이 전개되도록 하신 이유는 고수부님이 여성이라고 하는 문제도 있지만, 상제님이 워낙 영웅적인 인물인 차경석 성도를 과도기의 대부흥시대를 여는 진법창조의 난법의 기둥으로 박아놓으셨기 때문이다. 경석(京石)이란 ‘큰 돌’이란 뜻이다. 주춧돌이란 뜻이다. 상제님께서는 수부님과 차경석성도의 정음정양도수로서 게임을 하게 만드신 것이다. 하지만 이 게임에 한 번 잘못 걸려들어 과도기적 신앙을 하면 아무리 잘 믿어도 진리도 모르고 죽게 된다. 다시 거듭나야 한다. 머나먼 참법에의 길인 것이다. 사실 대세를 알고 보면 1~3변에 이르는 도운은 진법을 창조하는 난법기의 한 판의 게임이다. 이번에는 인사를 매듭짓고 역사를 바로 잡아 후천(천지의 가을)세계로 넘어가야 하기 때문에 우리가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행운의 시간을 갖게 된 것이다. 제3변 도운에 매달려 있는 우리들은 보통 축복받은 인간들이 아니다.

고수부님이 조종골에 계실 때(丁已, 道紀 57,1927년) 한 번은 대흥리로 차경석 성도를 찾아가신 적이 있다. 고수부님이 옛날 동생을 부르듯이 차경석 성도를 부르시자,“누님 그럴 수가 있습니까? 제가 지금 과거의 경석이 아니요, 만인의 두목입니다” 하고 처음에는 문을 걸어 잠그고 만나주지도 않아 고수부님이 집 밖 동네에서 주무신 적도 있다. 이 때 고수부님은 인간 심법의 바닥을 보신 것이다. 고수부님이 22년 동안 온갖 수모와 고난을 당하셨다. 그래서 고수부님이 제자들을 데리고 보천교에서 새로 지은 궁궐에 가서 집 주변을 도시면서 담뱃대로 건물을 향해 “탕탕!” 소리 내시며 총을 쏘는 흉내를 내셨다. 이것은 빨리 망하라고, 상제님의 퍼스트레이디인 수부(首婦)로서 난법의 운수, 그 기운을 거두시는 일종의 예식(ritual)인 것이다. 태모님은 차경석성도의 패망을 대해서 『선(善)도 오세(五歲)요 악(惡)도 오세니라.』(도전 11:319)로 말씀을 하셨다. 이는 난법과 참법의 운명, 즉 역사의 선악의 종말을 말씀하신 것이다. 악인은 다 죽고 선한 사람만 남는다면 역사가 성립할 수 없다. 차경석 성도가 고수부님에게 “내가 지금은 만인의 두목이다”고 말했을 때, 고수부님이 “네가 천자라고 하나 허천자(虛天子)다. 이놈아!” 이렇게 혼을 내며 경계하셨다. 고수부님이 판을 옮겨준 보천교의 차경석, 그것을 계기로 성도들이 모두 한 판 씩 차렸는데, 그 난법 기운을 거두면서 제2변 도운을 준비하는 마지막 9번째 교단에 자리잡고, 거기서 2년 동안 교주생활을 하시다가 제2변 부흥시대의 무대를 마련해 주고 떠나셨다. 짧은 2년의 세월은 제2변 도운이 일어나는 정통의 근거와 역사의 맥을 깔아주시는 과정인 것이다. 고수부님이 22년 동안의 세 살림의 교단시대를 마무리 짓고 떠나시면서 이상호에게 하신 말씀이 있다.

●“일후에 사람이 나면 용봉기를 꽂아 놓고 잘 맞이해야 하느니라.” 하시고 “용봉기를 꼭 꽂아 두라.” 하시며 다짐을 받으시니라. (도전11:365)
관통증산도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