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모수5 <고주몽>추모왕과 고구려 건국의 비밀 추모왕과 고구려 건국의 비밀 추모왕과 고구려 건국의 비밀 안병우 / 충북대 교수, 본부도장 현재 우리나라에 고대사와 관련하여 소위 ‘정사正史’로 인정되고 있는 책은 『삼국유사三國遺事』와 『삼국사기三國史記』가 전부다. 두 책 모두 삼국 시대를 중심으로 다루고 있어 엄밀하게 말하면 고대 사서라고 볼 수도 없지만 『삼국유사』는 우리 역사의 뿌리인 고조선과 고조선을 이은 북부여, 고구려에 관한 이야기가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 아닐 수 없다. 『삼국사기』는 고려 인종 때 왕명으로 편찬된 사서라고 하나 저자 김부식의 중화사대주의적 역사관이 곳곳에 배어 있어 우리 역사의 진면목을 드러내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무엇보다 신라 중심으로 삼국의 역사를 그리고 있다. 제1권부터 12권까지 ‘신라본기’, 제13권부터 28권까지.. 2023. 10. 11. <환단고기>북부여의 건국자 해모수 북부여의 건국자 해모수 북부여의 건국자 해모수 『환단고기』에서는 임술년 4월 초파일 진나라 시황제 때 해모수가 23세의 나이로 웅심산熊心山에서 일어나서 북부여를 건국하였다고 나온다. 이때의 임술년은 서기전 239년이다. 연대는 다르지만 『삼국유사』에 해모수가 임술년 4월 초파일에 북부여를 건국하였다는 부분만은 일치한다. 고조선은 초대 단군왕검이 건국한 지 1908년이 경과한 시점에 국호를 대부여로 바꾸었고, 그로부터 188년 후인 서기전 238년에 2096년의 장구한 역사를 뒤로한 채 문을 닫게 되는데 바로 1년 전인 서기전 239년에 해모수가 등장하여 북부여를 건국하였다. 해모수의 북부여는 고조선을 이은 나라로서 고조선과 마찬가지로 왕을 단군이라고 칭하였다. 해모수 단군은 재위 45년인 서기전 195년.. 2019. 6. 17. <고주몽>해모수는 고주몽의 아버지? 해모수는 고주몽의 아버지? 해모수는 고주몽의 아버지? 몇 해 전 인기리에 방영된 드라마 ‘주몽’에서는 고주몽과 해모수를 부자 관계로 그리고 있다. ‘주몽’의 작가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나오는 이야기를 위주로 대본을 구성한 듯하다. 그러나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자세히 비교하면서 읽어 보면 이것을 쉽게 단정할 수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동명왕편’을 보면 해모수가 유화와 사통私通하여 낳은 아들이 고주몽이라고 한다. 그러나 『삼국유사』는 좀 다르다. 이와 연관된 내용이 「북부여기」, 「동부여기」, 「고구려기」에 조금씩 나오는데 서로 일치하지 않는다(『삼국유사』 원문에는 「북부여」, 「동부여」, 「고구려」 등으로 표기하고 있으나, 모두 국명을 지칭하는 것이기에 이들.. 2019. 6. 17. <북부여>북부여의 건국,해모수 북부여의 건국,해모수 북부여의 건국,해모수 대단군의 통치권이 약화되고 부단군과 지방 군장들의 목소리가 커지던 고조선 말기에 한민족의 새 역사를 개창한 분이 바로 북부여를 건국한 해모수이다. 해모수는 요하 상류에 위치한 고조선의 제후국인 고리국 출신으로 BCE 239년 웅심산(지금의 길림성 서란)에서 기두하였다. 그 후 백악산 아사달을 점거하고, 당시 고열가 단군의 빈자리를 대신하고 있던 오가五加 부족장들의 공화정을 철폐하였다. 이에 백성들이 해모수를 단군으로 추대함으로써, 북부여의 역사가 시작되었다(BCE 232). ‘북부여’는‘ 북쪽에 있는 부여’라는 뜻이다. 고조선의 제3왕조 시대인 대부여의 북녘 땅을 중심으로 나라를 열었기 때문에,‘ 대’자를‘ 북’자로 바꾸어 북부여라 한 것이다. 그것은 망해 가던.. 2017. 8. 23. <북부여>잃어버린 역사 북부여-환단고기 잃어버린 역사 북부여-환단고기 잃어버린 역사 북부여-환단고기 북부여의 건국,해모수 단군 대단군의 통치권이 약화되고 부단군과 지방 군장들의 목소리가 커지던 고조선 말기에 한민족의 새 역사를 개창한 분이 바로 북부여를 건국한 해모수이다. 해모수는 요하 상류에 위치한 고조선의 제후국인 고리국 출신으로 BCE 239년 웅심산(지금의 길림성 서란)에서 기두하였다. 그 후 백악산 아사달을 점거하고, 당시 고열가 단군의 빈자리를 대신하고 있던 오가五加 부족장들의 공화정을 철폐하였다. 이에 백성들이 해모수를 단군으로 추대함으로써, 북부여의 역사가 시작되었다(BCE 232). ‘북부여’는‘ 북쪽에 있는 부여’라는 뜻이다. 고조선의 제3왕조 시대인 대부여의 북녘 땅을 중심으로 나라를 열었기 때문에,‘ 대’자를‘ 북’자로 .. 2017. 3. 22.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