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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이야기/잊혀진 역사

<고주몽>해모수는 고주몽의 아버지?

by 이세덕 2019. 6. 17.

<고주몽>해모수는 고주몽의 아버지?

<고주몽>해모수는 고주몽의 아버지?

 

몇 해 전 인기리에 방영된 드라마 ‘주몽’에서는 고주몽과 해모수를 부자 관계로 그리고 있다. ‘주몽’의 작가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나오는 이야기를 위주로 대본을 구성한 듯하다. 그러나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자세히 비교하면서 읽어 보면 이것을 쉽게 단정할 수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동명왕편’을 보면 해모수가 유화와 사통私通하여 낳은 아들이 고주몽이라고 한다. 그러나 『삼국유사』는 좀 다르다. 이와 연관된 내용이 「북부여기」, 「동부여기」, 「고구려기」에 조금씩 나오는데 서로 일치하지 않는다(『삼국유사』 원문에는 「북부여」, 「동부여」, 「고구려」 등으로 표기하고 있으나, 모두 국명을 지칭하는 것이기에 이들 나라의 역사를 기록한 내용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하여 「북부여기」, 「동부여기」, 「고구려기」 등으로 표기한다-필자 주). 「북부여기」를 보면 다음과 같이 나온다.


고기古記에 의하면 “「전한서前漢書」에 선제宣帝 신작神爵 3년 임술壬戌(서기전 58년으로 임술년이 아니고 계해년이다-필자 주) 4월 8일에 천제天帝가 흘승골성訖升骨城에 오룡거五龍車를 타고 내려와서 도읍을 정하여 왕이라 칭하고, 국호를 북부여北扶餘라 하고 스스로 이름을 해모수라고 하였다. 아들을 낳아 이름을 부루扶婁라 하고 해解로써 씨를 삼았다. 왕은 후에 상제의 명령으로 동부여로 도읍을 옮겼고, 동명제가 북부여를 이어 일어나 졸본주卒本州에 도읍을 정하고 졸본부여라 하였으니 즉 고구려高句麗의 시작이다.”라고 하였다.


정리하면 ①‘해모수는 임술년(서기전 58년)에 북부여를 건국하였고, 그의 아들은 (해)부루인데 (해모수가 죽은 후) (해)부루는 상제의 명령으로 북부여를 떠나서 동부여로 옮겨갔다’ ②‘고구려는 시조가 동명제인데 북부여를 이어서 일어났고 졸본주에 도읍을 정하여 처음에는 졸본부여라고 하였다’ 정도가 된다.

『삼국유사』 「동부여기」에는 위에서 언급한 동부여의 탄생 과정이 좀 더 구체적으로 나온다. 재상 아란불의 꿈에 천제가 내려와서 ‘장차 내 자손으로 하여금 이곳에 나라를 세우도록 할 터이니 너는 이곳을 떠나가라. 동해의 물가에 가섭원이란 곳이 있는데 땅이 기름지니 왕도를 세울 만한 곳이다’라고 해서 아란불이 해부루에게 주청하여 가섭원으로 옮겨 가 새로 나라를 세웠는데 그게 동부여이다. 정리하면 동부여는 북부여를 세운 해모수의 아들 해부루가 해모수를 이어 북부여의 왕으로 있다가 아란불의 꿈속에 나타난 상제의 명에 따라 가섭원이라고 하는 동쪽 지역으로 옮겨 가서 새로 세운 나라이다. 그리고 원래 북부여는 동명제가 이어받았으며 졸본주에 도읍을 정하여서 졸본부여라고도 하였는데 이것이 고구려의 시작이라는 것이다.

「북부여기」와 「동부여기」의 내용을 잘 분석해 보면 해모수, 해부루, 동명제의 관계를 딱히 알기가 어렵다. 「북부여기」에 의하면 해부루는 해모수의 아들인 것은 분명한데 동명제는 해모수의 아들인지 아닌지가 분명치 않다. 동명제가 북부여를 이어서 졸본부여를 세웠는데 이것이 고구려라고 한 바 동명제가 고주몽이고 그가 해모수의 아들이라면 해부루와 고주몽은 형제지간이 된다. 그러나 『삼국유사』 「고구려기」에서는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동명왕편에 나오는 이야기를 그대로 인용하고 있다. 해부루가 곤연이라고 하는 곳에서 아들 금와를 얻게 되는 이야기, 해부루가 아란불의 주청으로 동부여로 옮겨 가는 이야기, 금와가 왕이 되고 나서 유화가 낳은 알에서 주몽이 탄생하는 이야기, 주몽의 아버지가 해모수라는 이야기, 주몽이 고구려를 세우는 이야기 등이 나온다. 이러한 내용을 정리하면 고주몽은 동부여에서 해부루왕이 죽고 아들 금와왕이 즉위한 후에 유화부인이 낳은 알에서 태어났으며, 나중에 동부여를 탈출하여 졸본주에 이르러 고구려를 세웠으며, 이때의 나이가 22세이며, 서기전 37년이라는 것이다.


두 기록의 결론
현재 국사 교과서에서 말하는 고구려 건국에 대한 정설은 이상의 기록을 정리하여 다음과 같이 결론을 짓고 있다. 즉 고주몽은 해모수의 아들이며, 해모수가 서기전 58년에 북부여를 건국하였고, 서기전 37년에 고주몽이 22세의 나이로 고구려를 세웠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고주몽은 서기전 58년에 탄생한 것이 된다. 그런데 『삼국사기』에서 고주몽은 동부여의 해부루가 죽고 그의 아들 금와왕 재위 시절에 알에서 탄생하였다고 하였으므로 시기적으로 전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결론에 봉착하게 된다. 다시 말하면 해모수가 죽고 나서 한참 지난 시점인 금와왕 시절에 고주몽이 태어나므로 고주몽은 해모수의 아들이 될 수 없는데 아들이라고 하고 있으니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물론 『삼국사기』는 북부여를 그냥 부여라고 하였지만 해부루가 동부여로 옮겨간 이야기는 『삼국유사』 「동부여기」, 「북부여기」와 똑같기 때문에 부여왕 해부루라고 했을 때의 부여는 해모수가 건국했다고 하는 북부여를 말한다는 것은 불문가지다. 해모수가 북부여를 건국한 서기전 58년에 고주몽이 탄생했다고 해 놓고 해모수의 아들 해부루가 죽고 난 후 그의 아들 금와왕 때에 고주몽이 태어났다고 하는 앞뒤가 전혀 맞지 않는 기록이 바로 『삼국유사』와 『삼국사기』에 나오는 고주몽의 이야기의 결론이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나오는 이야기가 전적으로 틀렸다기보다는 이 책들이 편찬되는 시점에 이미 많은 이야기들이 왜곡되어서 잘못 전해져 왔다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삼국유사』와 『삼국사기』의 이러한 혼란스러운 이야기를 『환단고기』에서는 어떻게 전하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