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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탐험/안경전 종도사님 말씀

<환단고기 북콘서트>백제 22담로제

by 이세덕 2018. 2. 2.

<환단고기 북콘서트>백제 22담로제

<환단고기 북콘서트>백제 22담로제

 

백제 22담로제

그러면 백제의 영토 복원이라는 것은 여기서 끝나는 것인가? 그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유명한 담로제檐魯制입니다. 이 ‘담로’는 무엇인가? 이것을 알 때 대륙 백제, 옛 대백제의 역사정신, 강력한 우주적인 문화 통치정신 복원력을 우리가 온몸으로 느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송서宋書』 원가元嘉 27년(451년) 조에, ‘서하西河(산서성 하동도 임분현) 태수에 백제가 풍야부馮野夫를 멋대로 임명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것은 중국 사람들이 감정을 가지고 기록을 한 겁니다. 자기 나라 땅이었는데 백제에서 제후를 멋대로 임명했다고 한 것인데, 백제가 그 땅을 점령하여 옛 땅을 복원을 했으니까 그런 기록을 했어요. 요서뿐만 아니라 나머지 지역에 분봉지分封地가 있었고, 부용국附庸國을 거느렸습니다. ‘반파탁, 다라, 전라, 사라, 지미마련, 강시문, 하침라’ 같은 부용국, 제후국인데 지금 우리가 알 수도 없는 이름입니다. 24세 동성왕(479~501)과 25세 무령왕(501~523) 때에는 이 담로와 같은, 거점據點 성城이 발달했는데, 이런 것이 중국 역사 기록에 있어요.

「양직공도」에는, 이 담로는 중국의 군현郡縣과 같다고 하고, 국가를 통치하는 큰 성은 고마固麻라 한다고 했습니다. ‘읍邑을 담로라 하는데 중국의 군현과 같다’는 말은 『양서梁書』 「백제전」에도 나옵니다.

그러니까 동성왕과 무령왕 때, 5세기 중엽에서 6세기 중반까지 왕후를 임명할 지방행정 군현 조직이 대륙 백제 땅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 구체적인 호칭이 바로 담로입니다.

자, 지도를 볼까요? 백제의 22담로가 있었는데 여기 광양태수, 오서군, 진평군, 청하태수, 서하태수, 성양태수, 광릉태수가 있던 곳에 담로가 있었습니다. 저 아래 광서성에도 담로가 있었어요. 그런데 담로는 오키나와 유구국에도 있고, 대만과 필리핀에도 있고, 인도네시아까지 그 여러 나라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홍콩에서 수백 킬로를 가보면 거기 광서성에 백제역, 백제 마을, 백제 행정구역이 지금 그대로 다 있다는 겁니다. KBS에서 얼마 전에 이것을 취재해서 보여준 적이 있어요.

여기 보면 일본에는 담로도, 인도네시아 같은 데는 담수항, 저 위에 담수장, 저 말레이시아, 필리핀 같은 데도 담로문화가 있었습니다. 이 백제는 동아시아에서 국제무역을 한 해양 대제국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광서성 옆 광동성 같은 데에서는 ‘아빠담로’라는 말을 씁니다. 우리말하고 똑 같아요.

이 담로제의 기원은 『환단고기』에서 그 근거를 찾습니다. 6세 달문達門 단군 때 상춘常春, 지금의 장춘長春 구월산九月山에서 관경管境 내 모든 제후를 모아서 삼신상제님께 천제를 올린 기록이 있습니다. 그때 폐백을 바친 자는 대국이 둘, 소국이 스물, 읍락이 3,624곳이었습니다. 크고 작은 나라 22개국이 와서 문화 종주 단군조에 조공을 바치고 삼신상제님께 천제를 같이 올렸습니다.

그래서 22개 담로의 기원을 여기서 찾을 수 있습니다. 대백제국은 역사 광복, 문화 복원 다물주의의 강력한 의지를 단군조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이처럼 대백제국은 중국의 동부와, 중부 일부 지역, 남부지역, 그리고 동아시아 전체를 통관하는 대국이었습니다. 대백제는 삼신문화, 삼한문화 통치방식에 따라서, 한반도보다 몇 배 더 큰 대륙 백제에 우현왕右賢王을 두어 통치하고, 일본은 15세 응신 왕이 있기는 하지만 실제로 야마토 정권 당시 나라(奈良) 이쪽 지역에 좌현왕左賢王을 보내어서 일본을 통치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