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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10

<고주몽>추모왕과 고구려 건국의 비밀 추모왕과 고구려 건국의 비밀 추모왕과 고구려 건국의 비밀 안병우 / 충북대 교수, 본부도장 현재 우리나라에 고대사와 관련하여 소위 ‘정사正史’로 인정되고 있는 책은 『삼국유사三國遺事』와 『삼국사기三國史記』가 전부다. 두 책 모두 삼국 시대를 중심으로 다루고 있어 엄밀하게 말하면 고대 사서라고 볼 수도 없지만 『삼국유사』는 우리 역사의 뿌리인 고조선과 고조선을 이은 북부여, 고구려에 관한 이야기가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 아닐 수 없다. 『삼국사기』는 고려 인종 때 왕명으로 편찬된 사서라고 하나 저자 김부식의 중화사대주의적 역사관이 곳곳에 배어 있어 우리 역사의 진면목을 드러내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무엇보다 신라 중심으로 삼국의 역사를 그리고 있다. 제1권부터 12권까지 ‘신라본기’, 제13권부터 28권까지.. 2023. 10. 11.
<고두막한>동명성왕 고주몽 동명성왕 고주몽 동명성왕 고주몽 고주몽을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서는 동명성왕 혹은 동명제라고 칭하고 있다. 그런데 아무런 설명이 없다. 왜 그런 칭호를 얻었는지에 대해서. 결론적으로 고주몽을 동명성왕이라고 하는 것은 엄청난 역사 왜곡의 문제가 내포되어 있다는 것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동명제는 원래 고두막한이다. 그가 스스로 ‘동명東明’이라고 불렀기 때문이다. 고두막한은 졸본 땅에 부여를 세운 다음 졸본부여라고 했고, 동명부여라고도 했다. 그래서 동명왕이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어찌하여 고주몽을 동명왕으로 부르게 되었는가? 좁게 보면 고두막한만이 동명왕이 되는 것이지만 넓게 본다면 고두막한을 이은 고무서 단군, 또 그 뒤를 이은 고주몽도 동명왕이라고 볼 수도 있다. 모두 동명부여의 왕이기 때문이.. 2019. 6. 18.
<김부식>삼국사기의 고구려 건국 연도를 서기전 37년이라고 한 이유 삼국사기의 고구려 건국 연도를 서기전 37년이라고 한 이유 삼국사기의 고구려 건국 연도를 서기전 37년이라고 한 이유 고주몽이 북부여의 단군이 된 이때가 서기전 58년이다. 서기전 79년생이므로 이때의 나이는 『삼국사기』에서 말한 대로 22세가 된다. 고주몽은 북부여의 왕위를 물려받은 것이지 정복 전쟁을 통하여 고구려를 창업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므로 처음에는 북부여(졸본부여)의 단군이었다. 그런데 어째서 고구려의 시조라고 하는가? 북부여의 단군으로 다물多勿이라는 연호를 사용하면서 22년을 지내 오다가 서기전 37년에 이르러 연호를 평락平樂으로 바꾸면서 나라 이름도 해모수의 고향이었던 고구려로 바꾸었다. 이로부터 고구려의 시조가 된 것이다. 『삼국사기』에서는 이때를 고구려의 건국으로 본 것이지만 고주몽으.. 2019. 6. 18.
<고구려>고주몽의 혈통 고주몽의 혈통 고주몽의 혈통 해모수의 장자인 모수리는 북부여의 2대 단군이 되었고, 그의 동생 고진高辰은 고리군의 군왕(稾離郡王)으로 봉작을 받았다. 북부여의 제후인 셈이다. 고진의 손자 불리지弗離支(일명 고모수高慕漱)가 있었는데 이 불리지가 바로 하백의 딸 유화와 사통한 주인공으로 고주몽의 아버지이다. 그러니 고주몽은 해모수의 아들이 아니라 고손자高孫子가 된다. 고주몽이 태어난 해는 서기전 79년 임인년壬寅年이고 생일은 5월 5일이다. 이것이 『환단고기』가 밝혀 주고 있는 고주몽의 혈통과 탄생에 관한 비밀이다. 불리지는 요절하였기 때문에 미혼모 유화는 어린 고주몽을 안고 사방으로 돌아다니다가 동부여의 해부루 왕에게 찾아갔다. 해부루는 혈통으로 보자면 고주몽의 7촌 아저씨였으므로 흔쾌히 고주몽과 유화를 .. 2019. 6. 18.
<고주몽>해모수는 고주몽의 아버지? 해모수는 고주몽의 아버지? 해모수는 고주몽의 아버지? 몇 해 전 인기리에 방영된 드라마 ‘주몽’에서는 고주몽과 해모수를 부자 관계로 그리고 있다. ‘주몽’의 작가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나오는 이야기를 위주로 대본을 구성한 듯하다. 그러나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자세히 비교하면서 읽어 보면 이것을 쉽게 단정할 수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동명왕편’을 보면 해모수가 유화와 사통私通하여 낳은 아들이 고주몽이라고 한다. 그러나 『삼국유사』는 좀 다르다. 이와 연관된 내용이 「북부여기」, 「동부여기」, 「고구려기」에 조금씩 나오는데 서로 일치하지 않는다(『삼국유사』 원문에는 「북부여」, 「동부여」, 「고구려」 등으로 표기하고 있으나, 모두 국명을 지칭하는 것이기에 이들.. 2019. 6. 17.
<환단고기 북콘서트>신교를 뿌리내린 백제의 문화 역사정신 신교를 뿌리내린 백제의 문화 역사정신 신교를 뿌리내린 백제의 문화 역사정신 백제 왕조 성립사 백제 왕조 역사의 성립을 한번 간단하게 정리해 보겠습니다. 백제 왕조 성립사에서 그 시조는 형인 비류沸流와 그 아우인 온조溫祚입니다. 온조가 한성, 지금의 서울에서 백제를 건국하고 약 5백 년간 한성 백제 시대를 계속하다가, 고구려에게 공격을 당해서 웅진熊津(공주)으로 내려왔습니다. 이 백제 시조 온조는 본래 그 아버지가 고주몽高朱蒙 아니에요? 『삼국사기』에서는 비류와 온조를, 고주몽이 부여 왕의 딸과 혼인해서 낳은 아들이라 기록했습니다. 그런데 이어서 다른 설을 소개하여, 과부가 된, 대상大商 연타발延陁勃의 딸 소서노召西弩가 북부여 왕 해부루解夫婁의 서손庶孫인 우태優台와 결혼해서 비류와 온조를 낳았다고 합니다... 2018. 1. 31.
<다물흥방지가>신교와 유불선 정수를 집대성한 다물흥방지가 신교와 유불선 정수를 집대성한 다물흥방지가 신교와 유불선 정수를 집대성한 다물흥방지가 이것을 집대성한 것이, 고구려 군인들이 전쟁을 하러 가기 전에 외쳤던 「다물흥방지가多勿興邦之歌」입니다. 고주몽高朱蒙의 국가 통치 근본이념, 국시國是가 ‘다물多勿’인데, 다물은 ‘되물린다. 다시 회복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환국, 배달의 문화정신과 잃어버린 옛 영역을 복원했습니다. 환국·배달·조선의 고유 경전으로 환국의 「천부경」, 배달국의 「삼일신고」, 다음으로 단군조선에서 우리가 지금 본 「염표문」도 있고 그 전에 ‘활 노래’도 있습니다. 자, 「다물흥방지가」를 잠깐 볼까요? 先去者爲法兮(선거자위법혜)여 後來爲上(후래위상)이로다 爲法故(위법고)로 不生不滅(불생불멸)이오 爲上故(위상고)로 無貴無賤(무귀무천)이라 人中天地.. 2017. 12. 31.
<역사왜곡>동북아 역사전쟁의 근원은 왜곡, 말살된 역사 문화 동북아 역사전쟁의 근원은 왜곡, 말살된 역사 문화 동북아 역사전쟁의 근원은 왜곡, 말살된 역사 문화 우선 동북아 3국 한국, 일본, 중국은 자기 조상들의 근원을 부정하고 있습니다. 과학의 이름으로, 현대 역사학의 이름으로 역사의 시조를 부정하고 있어요. 이 역사의 도덕성, 배은망덕의 역사를 제대로 직시할 때 앞으로 닥쳐올 사태의 심각성을 깨칠 수가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이 역사의 근원과 뿌리를 송두리째 상실했습니다. 남북 분단의 역사가 이제 70여 년을 넘어서는데, 전쟁이라는 남북한의 비극의 역사 운명 그 중심에 오늘 우리가 모두 서 있는 것입니다. 이 한반도는 동서 강대국, 특히 미국과 중국이 맞장 뜨는 대결의 중심축으로서 자리를 하고 있습니다. 단궁ㅈ 고대사와 근대사를 보는 두 눈의 실명 한국인은.. 2017. 12. 18.
<대진국>고구려를 이은 대진국(발해)과 그 이후 고구려를 이은 대진국(발해)과 그 이후 고구려를 이은 대진국(발해)과 그 이후 고구려를 이은 대진국(발해)과 그 이후 백제는 나중에 신라에 병합되었고(CE 660), 고구려는 나당 연합군에게 망한 후(CE 668) 유장遺將 대중상과 그 아들 대조영이 세운 대진국으로 이어졌다. 고구려가 망할 때 고구려의 유장 대중상이 동쪽으로 동모산에 이르러 성을 쌓고 새 나라를 열어‘ 고구려를 회복하여 부흥한다’는 뜻에서 나라 이름을 후고구려라 하였다. 대진국(발해)은 고구려의 후신인 것이다. 대중상이 죽고, 그 아들 대조영이 당나라군을 격파하고 6천 리의 강역을 개척하여 고구려의 옛 영토를 상당히 회복하고 국호를 대진大震이라 하였다. 진震은 동방을 뜻하므로 대진국은‘ 강대한 동방의 나라’라는 의미다. 그러므로 대진국은.. 2017. 11. 3.
<고구려>북부여를 계승한 고구려 북부여를 계승한 고구려 북부여를 계승한 고구려 북부여를 계승한 고구려 북부여는 비록 고조선을 계승하였지만, 고조선의 전 영역을 흡수하지는 못하였다. 그리하여 열국列國의 분열시대가 시작되어 고조선의 옛 영토에는 북부여, 동부여, 서부여, 낙랑국, 남삼한, 옥저, 동예 등의 여러 나라가 형성되었다. 열국시대는 그 후 사국시대(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를 거쳐 삼국시대(고구려, 백제, 신라)로 변화하였다. 그렇다면 북부여의 국통은 어디로 계승되었는가? 고주몽이 세운 고구려로 계승되었다. 북부여의 고무서단군은 자신을“ 천제의 아들(天帝子)”이라고 밝히는 주몽을 범상치 않은 인물로 여겨 둘째 딸인 소서노를 주어 사위로 삼았다. 아들이 없던 단군은 재위 2년 만에 붕어하면서 그에게 대통을 물려주었다(BCE 58.. 2017. 11.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