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역사이야기/잊혀진 역사98

<보천교>보천교 독립운동사 증언 (차경석 성도님 아들 차용남) 보천교 독립운동사 증언 (차경석 성도님 아들 차용남) 보천교 독립운동사 증언 (차경석 성도님 아들 차용남) 차경석은 일제 식민지 통치 아래에서 신흥종교 보천교를 창건했다. 그리하여 세인의 입에 오르내렸고 일제의 탄압도 따랐다. 보천교에 대해 묻자, 용남(차경석 성도님의 아들 차용남)은 신중하면서 긴장하는 듯 했다. 그리고 용남의 달변과 조리있는 대답은 이러했다. "왜정 때, 자기(총독부)들이 발표한 것이 육백만입니다. 그때 우리나라 동포를 천 팔백만 인구라고 했지요. 교종이라고 교에서 종을 지은 것이 있어요. 종각이 있어서 삼시로 종을 치고 그랬는데, 그 종이 우리나라에서 제일 컸어요. 그런데 경주 봉덕종이 크고, 서울 보신각에 종이 더 크다고 하지만은, 보천교 종은 우리나라 제일 큰 종인데, 저 산이 .. 2017. 9. 20.
<한글날>훈민정음-한글의 날,한글날 훈민정음-한글의 날,한글날 훈민정음-한글의 날,한글날 1926년 11월 한글학회의 전신인 조선어연구회를 주축으로 매년 음력 9월 29일을 '가갸날'로 정해 행사를 거행했고 1928년에 '한글날'로 이름을 바꾸었다. 1932, 1933년에는 양력 10월 29일에 행사를 치렀으며, 1934~45년에는 10월 28일에 행사를 치렀다. 1940년 발견된 〈훈민정음〉 원본의 말문에 적힌 날짜에 근거하여 1945년부터 한글날을 10월 9일로 확정했다. 이 날에는 세종문화상을 시상하고 세종대왕의 능인 영릉을 참배하며 전국에서 학술대회 및 각종 백일장을 거행한다. 2005년에 국경일로 승격되었으며, 2012년 12월에는 공휴일로 지정되었다. 개요 한국의 국경일. 매년 10월 9일이다. 한국의 문화유산인 한글을 제정 반.. 2017. 9. 13.
<환단고기>오성취루(五星聚婁)는 하늘에 새긴 우리역사였다. 오성취루(五星聚婁)는 하늘에 새긴 우리역사였다. 오성취루(五星聚婁)는 하늘에 새긴 우리역사였다. 오성취루(五星聚婁)는 환단고기(桓檀古記)에 실린 단군세기와 단기고사 무진 50년(BC 1733년)에 오성(五星)이 모여들고 누런 학이 날아와 뜰의 소나무에 깃들었다고 한 기록을 보고 서울대 천문학자 박창범 교수가 검증한 것을 말한다. 3700년 전에 수성(水星) 금성(金星) 화성(火星) 목성(木星) 토성(土星)등 다섯 행성이 루성(婁星) 쪽으로 모여 일직선상으로 나타나는 천문 현상을 말한다. 오성취루 현상은 사람의 육안으로도 관측할 수가 있고, 이런 천문현상은 250년마다 한번 정도 일어난다고 한다. 환단고기는 삼국유사나 제왕기처럼 한사람이 쓴 책은 아니다. 환단고기는 삼성기(三聖記), 단군세기(檀君世紀), .. 2017. 9. 1.
환국에서 뻗어나간 인류문명 환국에서 뻗어나간 인류문명 환국에서 뻗어나간 인류문명 환국시대 말년에 초대 환웅천황이 동방으로 이주하여 배달국을 건설할 때, 그 이전부터 동쪽으로 베링해협을 건너 이주한 무리가 아메리카의 인디언이 되고, 남아메리카에 간 무리들은 인디오가 되었다. 이것은 언어, 혈액형, 체질, 치아모양 등 과학적인 연구를 통해 이미 밝혀진 바이며, 미국의 고고학자들이나 인류학자들이 인정하고 있는 바이다. 윷놀이, 실뜨기 같은 인디언과 인디오의 풍습, 유물만 봐도 우리와 유사한 것이 너무도 많음을 알 수 있다. 또한 12환국의 한 갈래는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발원지역인 티그리스 강 유역으로 이동하여 수메르 문명을 열었다. 수메르 문명 연구의 최고 권위자인 크래머(Samuel N. Kramer)는 BC 3500년 전, 서.. 2017. 8. 31.
<환단고기>인류 역사의 뿌리 환국 인류 역사의 뿌리 환국 인류 역사의 뿌리 환국 한국의 역사는 상대(上代), 고대, 중세 또는 중고(中古), 근대, 현대로 크게 구분된다. 상대는 다시 삼성조시대(환국, 배달국, 단군조선)와 열국시대(북부여, 삼한, 낙랑, 옥저 등)로 구분되고, 고대는 다시 사국시대(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와 남북조(발해, 신라)시대로 구분된다. 고려·조선시대는 중세에 해당되며, 구한말과 일제강점기가 근대, 8.15해방 이후로 지금까지는 현대에 속한다. 이중 우리 역사의 뿌리에 해당하는 삼성조시대를 알아보자. 『환단고기』 「삼성기」 하편에 의하면 “옛날에 환국이라는 나라가 있었는데, 남북이 5만리, 동서가 2만리 되는 대제국으로서 바이칼호를 중심으로 나라를 이루고 있었고, 비리국, 양운국, 구막한국, 우루국, 수밀이.. 2017. 8. 31.
<배달국>한민족사의 첫 발자국, 배달 한민족사의 첫 발자국,배달 한민족사의 첫 발자국,배달 도가사서의 기록에 의하면, 환국 말기에 이르러 마지막 환인인 7대 지위리 환인께서 환국의 환웅에게 천부인(天符印)을 주고 풍백(風伯)과 우사(雨師), 운사(雲師)와 제세핵랑군 3천명을 주어 동방으로 보냈다. 이에 환웅은 태백산(백두산) 아래(천평)에서 세계 최초의 도시 국가인 신시(神市)를 건설하고 나라를 세우니 이로부터 배달국시대가 열리게 되었다. 그리고 백두산의 박달나무 아래에서 제단을 만들고 천제를 올렸다. 배달국시대는 초대 거발환 환웅으로부터 18대 거불단 환웅까지, BC 3898~BC 2333년까지 1565년 동안 지속되었다. 흔히 우리 민족을 ‘배달민족’, ‘배달겨레’ 라 부르는데, 이 배달의 유래가 여기에서 비롯 되었다. 이 배달환웅시대가.. 2017. 8. 30.
<부여>부여사를 찾는 날이 곧 역사 광복의 날 부여사를 찾는 날이 곧 역사 광복의 날 부여사를 찾는 날이 곧 역사 광복의 날 후한서, 삼국지 등 중국 역사서에 나오는 부여사는 모두 서부여의 역사이다. 서부여는 동부여가 망한 후 요서에 생긴 망명부여로서, 서부여사는 부여의 끝자락 역사이다. 예를 들어 삼국지 동이전에 나오는 울구태蔚仇台, 간위거簡位居, 마여麻余, 의려依慮 등은 모두 서부여의 왕이다. 그런데도 강단사학계에서 나온 책과 논문들은 서부여를 부여의 원래 모습인 양 그리고 있다. 그 이유는 부여에 대한 단편적이고 왜곡된 정보를 담고 있는 중국 사서의 기록에만 의존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여 부여의 원형이 처참히 파괴되고 한국사의 허리가 잘려 버렸다. 한국사의 국통 맥이 어지러워지고 뿌리 역사가 소멸되었다. 북부여라는 잃어버린 고리가 고조선과 고.. 2017. 8. 29.
<불가리아>서방으로 진출한 부여족 서방으로 진출한 부여족 서방으로 진출한 부여족 강단 사학계는 부여 역사를 외면하지만, 부여사는 단재 신채호가 한국 민족을 부여족이라고 부를 정도로 한민족사의 골간을 이룬다. 몇 안 되는 부여사 연구가 중에 신용하 교수는, 부여가 최소한 BCE 5세기부터 CE 5세기까지 약 천여 년 동안 만주 일대에 존재하였으며 CE 4세기 전반까지 동북아의 최선진국이었다고 말한다. CE 5세기라면『 환단고기』가 전하는, 북부여에서 분파된 마지막 부여인 연나부부여(서부여)가 멸망한 때(494)와 일치한다. 신 교수의 연구에 의하면, 4세기 말경 부여족의 일파가 중앙아시아의 카스피 해와 흑해 사이에 위치한‘ 캅카스’지방으로 이주하였고, 그 후 5∼7세기 초까지 돈강 유역과 북캅카스 지역으로 계속 이주하였다. 7세기의 서양사.. 2017. 8. 28.
<북부여>북부여의 구국 영웅,고두막한-동명왕 북부여의 구국 영웅,고두막한-동명왕 북부여의 구국 영웅,고두막한-동명왕 북부여는 4세 단군에 이르러 역사적인 큰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BCE 109년, 한 무제가 위만의 손자인 우거왕이 다스리던 위만조선으로 쳐들어왔다. 한나라는 초기에 연신 패하였으나 이간책으로 위만정권 지도층을 분열시켜 결국 우거를 죽이고 왕검성을 점령하였다(BCE 108). 이때 한 무제는 새로운 점령지에‘ 한나라의 군현[漢四郡]’을 설치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우거 제거에 공을 세운 한민족의 강한 저항에 부딪쳐 고조선 유민들의 자치를 인정하는 데 그쳐야 했다. 위만정권을 무너뜨린 한 무제는 요동을 넘어 북부여까지 침공하였다. 그런데 당시 북부여의 4세 고우루단군은 워낙 심성이 유약하여 제대로 싸우지도 못하고 도중에 병사하고 말았다.. 2017. 8. 25.
<북부여와 남삼한>북쪽에는 북부여, 남쪽에는 남삼한 북쪽에는 북부여, 남쪽에는 남삼한 북쪽에는 북부여, 남쪽에는 남삼한 준왕이 망하고 위만정권이 들어선 사건은 한민족에게 또 다른 역사 개척의 계기가 되었다. 번조선 땅이 위만에게 강탈당하자 상장군 탁卓이 사람들을 이끌고 한강 이남으로 이주하여 새로이‘ 마한’을 세웠다(BCE 194). 옛 진조선과 막조선의 일부 백성들도 한강 아래로 남하하여 각기‘ 진한’과‘ 변한’을 세웠다. 마한은 호남의 익산을, 진한은 경북 경주를, 변한은 경남 김해를 중심으로 하여 형성되었다. 비록 불의한 위만정권 때문에 남하한 것이지만, 한강 이남에서 새로운 삼한시대를 연 것이다. 단재 신채호는‘전후삼한설前後三韓說’을 주창하여 한반도에 형성된 삼한을‘ 후삼한(남삼한)’이라 부르면서, 고조선 시대의‘ 전삼한(북삼한)’과 구별하였다. .. 2017. 8. 24.
<북부여>북부여의 건국,해모수 북부여의 건국,해모수 북부여의 건국,해모수 대단군의 통치권이 약화되고 부단군과 지방 군장들의 목소리가 커지던 고조선 말기에 한민족의 새 역사를 개창한 분이 바로 북부여를 건국한 해모수이다. 해모수는 요하 상류에 위치한 고조선의 제후국인 고리국 출신으로 BCE 239년 웅심산(지금의 길림성 서란)에서 기두하였다. 그 후 백악산 아사달을 점거하고, 당시 고열가 단군의 빈자리를 대신하고 있던 오가五加 부족장들의 공화정을 철폐하였다. 이에 백성들이 해모수를 단군으로 추대함으로써, 북부여의 역사가 시작되었다(BCE 232). ‘북부여’는‘ 북쪽에 있는 부여’라는 뜻이다. 고조선의 제3왕조 시대인 대부여의 북녘 땅을 중심으로 나라를 열었기 때문에,‘ 대’자를‘ 북’자로 바꾸어 북부여라 한 것이다. 그것은 망해 가던.. 2017. 8. 23.
<동이족>외국학자들이 보는 동이족(東夷族) 외국학자들이 보는 동이족(東夷族) 외국학자들이 보는 동이족(東夷族) 중국의 역사를 논할 때, 그 중심에 있으면서 동아시아를 지배한 어질고, 예절바르고, 창의력이 넘치고 또 평화를 사랑하는「동이족」을 빼놓을 수가 없다. 해동성인(海東聖人)으로 추앙받는 공자(孔子)도 동이족이요, 주역과 역법(曆法)을 창안했다는 희화자(羲和子)는 물론, 농사법과 의학을 발전시켰다는 염제신농씨(炎帝神農氏)도 동이족이다. 동양의 태평성대를 이룩했다는 최고의 성군(聖君) 요(堯) 임금과 순(舜) 임금도 동이족이요, 최초로 철갑(鐵甲)에 구리투구로 무장하여 박치기 전법으로 유명한 치우(蚩尤) 천황도 동이족이요, 문자(文字, 소위 漢字)를 만든 것도 동이족이요, 절개로 유명한 백이(伯夷)와 숙제(叔弟)까지도 동이족이다. 이에 놀란 중.. 2017. 8.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