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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이야기/잊혀진 역사98

<단군조선>식민사학자 이병도를 회개시킨 최태영박사 식민사학자 이병도를 회개시킨 최태영박사 식민사학자 이병도를 회개시킨 최태영박사 "식민사학자 이병도를 회개시킨 최태영박사" 올곧이 역사를 관통한 학자의 일생 스스로 강사가 돼 학도병 권유 연설피해 70세 상고사 연구시작, 100세 때 책발간 최태영박사 개교 100주년을 맞이해 한국인 최초의 법학 정교수이자 본교의 첫 한국인 정교수였던 최태영 박사를 만났다. 1900년생인 최 박사는 현재는 노환으로 병원에 입원해 간병인의 도움을 받고 있었지만 병실안에 가지런히 놓인 책들과 박사의 온화한 말씀은 올곧은 학자의 일생(一生)을 웅변하고 있었다. 깨끗하게 옷을 갈아입고, 의자에 앉아 기자를 맞은 최박사는 보성전문학교의 정교수가 된 과정을 이렇게 설명했다. 최 박사는 경신학교를 졸업한 뒤 영미법을 배워오라는 부친의 .. 2017. 8. 18.
<동북아역사재단>식민사학자들에게 사기당한 노무현 정권 식민사학자들에게 사기당한 노무현 정권 식민사학자들에게 사기당한 노무현 정권 2017년 04월 26일 허성관 칼럼 경기일보 삼청동 국무총리 공관에서 2003년 당시 고건 총리 주재로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한 대책회의가 열렸다. 동북공정의 주요 내용은 ‘현재의 중화인민공화국 영토내에서 일어났던 역사는 모두 중국의 역사라는 관점에서 중국정부가 중국사를 정리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현재 중국영토에 있었던 고조선 고구려 발해 등 우리민족의 역사가 중국사의 일부가 된다. 노무현 정부 입장에서는 우리 고대사가 중국사의 일부로 편입되는 것을 수수방관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우리나라 식민사학자들이 일제 조선총독부가 날조한 역사를 이어받아 위만조선이 평양을 중심으로 한 한반도 북부에 있었고, 한(漢)나라가 위만조선을 .. 2017. 8. 17.
<단재 신채호선생>역사로 민족정신을 깨운 단재 신채호선생 역사로 민족정신을 깨운 단재 신채호선생 역사로 민족정신을 깨운 단재 신채호선생 설 명절을 막 지낸 2월 21일은 단재 신채호 선생께서 여순감옥에서 순국하신 지 71주기 되는 날이었다. 이날 충북 청원군 낭성면 귀래리 단재 사당에서는 ‘단재 신채호선생 기념사업회’와 ‘한국민족예술인 총연합회 충북지부’ 등의 주관으로 추모행사가 열렸다. 천재적 사학자이자 열렬한 독립운동가였으며 행동하는 지식인으로서 한평생 ‘민족’과 ‘역사’를 가슴에 품었던 단재 신채호. 그의 날카로운 필치는 당시 국정과 일본의 불의를 통렬히 비판했고, 고고한 지성과 뜨거운 민족애는 조선민중의 혼을 깨웠다. 남북 만주와 시베리아를 돌아다니며 민족사의 족적을 더듬어 역사를 바로잡아 동포들에게 자부심과 희망을 심어주고자 했던 신채호 선생. 삼천리.. 2017. 7. 25.
<역사왜곡>동북아는 역사전쟁인데-나라 안은 식민사학자들 세상 동북아는 역사전쟁인데-나라 안은 식민사학자들 세상 동북아는 역사전쟁인데-나라 안은 식민사학자들 세상 지금 국사는 왜 내가 어릴 때 배운 국사와 다를까? 굴절된 역사 읽는 현실, 광복 70년 역사정립 다시 할 때 나는 역사학자가 아니다. 다만 항일 가문에서 성장한 한 시민으로서 우리나라 역사에 대하여 남다른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내가 학교에서 배운 역사가 집안에서 듣던 역사와 다르기 때문에 항상 의문을 가져왔다. ‘대일 항쟁기’에 집안 어른들이 말씀하신 역사를 회고해 보면, 모두 악랄한 일본의 역사 왜곡이었다. 나의 종조부인 초대 부통령 성재 이시영(省齋 李始榮) 선생은 1934년 중국에서 일본 고등계 경찰과 헌병의 수배를 받아 쫓기는 신세였음에도 불구하고 중국과 일본 양국의 우리.. 2017. 7. 14.
<환단고기>환국,배달, 단군조선 6,962년 국통맥2 환국,배달, 단군조선 6,962년 국통맥2 환국,배달, 단군조선 6,962년 국통맥2 환국은 어떤 나라였나? ◎ 오늘은 뜻밖에도 새로운 이야기,『 고기』에 대해 알게 됐습니다. 일연이 그 책을 인용해‘ 옛적에 환국이 있었다’ 했는데, 그러면『 환단고기』에는 이 환국에 대해 어떻게 기술돼 있습니까? ▶『환단고기』 가운데 신라 고승 안함로의 『삼성기』상권은 ‘우리 환족이 세운 나라가 가장 오래 되었다(吾桓建國最古)’로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이 환국은 7대 환인씨에 걸쳐 통치되었다고 기록됐습니다. 고려 때 인물로 추정되는 원동중도 『삼성기』하권서 ‘옛적에 환국이 있었다(昔有桓國)’고 쓰고 있습니다. 나아가‘ 환국의 통치자인 환인은 하늘을 대행해 널리 교화를 베풀어 싸움과 굶주림과 추위가 사라지게 되었고 백성들.. 2017. 7. 12.
<환단고기>환국,배달,단군조선 6,962년의 국통맥1 환국,배달,단군조선 6,962년의 국통맥 환국,배달,단군조선 6,962년의 국통맥 환국-배달-단군조선의 국통계승과정 9천년 한민족사의 위대한 증언 안경전 종도사님의『 환단고기桓檀古記』 이야기 - 환국에서 배달, 단군조선까지 6,962년의 우리 역사 국통맥 “우리 국민들이 한마음으로 보다 중대하게, 시급하게 달려들어야 하는 역사 쪽 주제는 사실 온통 왜곡되고 잃어버린 한민족의 본래 역사부터 되찾아 바로 세우는 일입니다.” “단군조선 건국 연대인 기원전 2333년부터 지금까지 따져서 흔히 우리 역사가 반만년 역사다, 그렇게들 말하는데 그것은 분명히 잘못된 것입니다.” “ 환국은 역대 일곱 분의 환인들이 기원전 7197년부터 기원전 3897년까지 3,301년간 다스렸고, 배달국은 역대 열여덟 분의 환웅들이 기.. 2017. 7. 12.
<역사왜곡>한사군의 한반도 내 위치설은 식민사관 잔재 한사군의 한반도 내 위치설은 식민사관 잔재 한사군의 한반도 내 위치설은 식민사관 잔재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 주장 한국사에서 가장 논란거리 중 하나는 한(漢)나라가 고조선을 멸망시키고 설치했다는 한사군(漢四郡)의 위치에 대한 것이다. 한사군의 핵심이었던 낙랑군에 대해 주류 사학계는 한반도에 있었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만주 서쪽(요동)에 자리하고 있었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은 지난달 30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침략(식민)사관 재등장의 역사적 구조'를 주제로 열린 세미나에서 '한사군의 한반도 내 위치설'은 식민사관을 해방 후에도 정설로 받아들인 결과라고 주장했다. 이 소장은 "일제는 대한제국 강점 직후 중추원 산하에 '조선반도사편찬위원회'를 만들고 3·1운동 이후에는 총독.. 2017. 7. 10.
<배달국>한민족 통치 이념의 뿌리-홍익인간,재세이화,광명개천 한민족 통치 이념의 뿌리-홍익인간,재세이화,광명개천 한민족 통치 이념의 뿌리-홍익인간,재세이화,광명개천 한민족 통치 이념의 뿌리 상제님 도법은 원시반본原始返本을 바탕으로 하여 선포된다. 원시반본의 도는 역사의 뿌리로 돌아가서 근본을 바로 세운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상제님 진리는 동북아를 넘어서서 지구촌 시원문화와 인류 원형문화, 잃어버린 역사 실상을 모두 드러내 준다. 이 원시반본을 한민족 통치 이념에서 볼 때, 그것은 한 마디로 홍익인간弘益人間이다. 그리고 인류 문화의 전체 틀에서는 ‘신교神敎’라 할 수 있다. 어제가 개천절이었다. 개천절은 한민족에게 가장 의미 있는 국경일이다. 그런데 이 개천절만 아니라 홍익인간, 삼신상제 등 시원문화 코드가 고조선을 중심으로 해서 많이 왜곡되어 있다. 개천절은.. 2017. 7. 7.
<동북아역사재단>국민세금으로 동북공정을 지원하고 있다? 국민세금으로 동북공정을 지원하고 있다? 국민세금으로 동북공정을 지원하고 있다? 현재 중국 각 성의 박물관에 가 보면 큰 지도가 붙어 있다. 그 지도에는 예외 없이 만리장성의 동쪽 끝을 한반도 깊숙한 황해도까지 연결해 놓았다. 만리장성이 황해도까지 연결되어 있었다면 북한 사람들은 굳이 만리장성을 구경하러 중국까지 갈 필요가 없다. 그러나 유사 이래 수천 년간 한반도 내에서 만리장성을 구경했다는 사람은 없다. 그렇게 많은 글을 남겼던 조선의 문인들도 조선에서 만리장성을 보았다는 시나 기행문을 남기지 않았다. 한반도 북부까지 연장해놓은 만리장성 중국사회과학원에서 공식 간행한 『중국역사지도집』에 그려져 있는 만리장성의 동쪽 끝. 중국이 이렇게 주장하는 근거는 한사군에 있다. 중국 고대 한나라가 고조선을 멸망시키.. 2017. 6. 29.
<갑오동학혁명>만고명장 전명숙 장군의 큰 공덕 만고명장 전명숙 장군의 큰 공덕 만고명장 전명숙 장군의 큰 공덕 인류역사를 보면, 지배권력의 횡포와 탐학을 못이겨 민중이 들고 일어선 역사를 흔히 볼 수 있다. 이는 ‘부(富)의 독점’이 무엇보다도 심각한 사회적 불의(不義)임을 입증하는 것이라 말할 수 있다. 여기 조선의 역사에서 ‘세금’하면 떠오르는 한 사건이 있다. 바로 ‘갑오동학혁명’이다. 상제님은 갑오동학혁명의 본질이 무엇인지 그 핵심을 아주 간결하게 밝혀주고 계신다. 전명숙(全明淑)이 도탄에 빠진 백성을 건지고 상민(常民)들의 천한 신분을 풀어 주고자 하여 모든 신명들이 이를 가상히 여겼느니라. 전명숙은 만고(萬古)의 명장(名將)이니라. 벼슬 없는 가난한 선비로 일어나 천하의 난을 동(動)케 한 자는 만고에 오직 전명숙 한 사람뿐이니라. 세상 .. 2017. 5. 30.
<역사왜곡>고인들의 70%가 한반도에 존재 그이유는? 고인들의 70%가 한반도에 존재 그이유는? 고인들의 70%가 한반도에 존재 그이유는? "나는 원래 비교역사학의 대가가 아닌가. 처음 내가 이 신비한 민족과 맞닥뜨린 것은 고인돌을 통해서였어. 세계 고인돌의 반 이상이 한국에 있더군. 이상하지 않나? 이 넓은 지구상에 그 좁은 한반도라는 지역에 세계 고인돌의 70%가 있다는 사실이 말이야. 고인돌에 미쳐 있던 나는 한국어를 아주 열심히 공부했어. 그러고는 무작정 한국에 갔어. 뭐라고 얻어보려고 말이야." "호, 세계 고인돌의 반 이상이 한국에 있는 줄은 저도 몰랐는데요." 사나이는 약간 뒤틀린 웃음을 지었다. "그런데 막상 한국에 가니 아무도 모르는거야. 학자든 뭐든 아무도 세계 고인돌의 반 이상이 자기 나라에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어. 그래서 나는 .. 2017. 4. 19.
<북부여>잃어버린 역사 북부여-환단고기 잃어버린 역사 북부여-환단고기 잃어버린 역사 북부여-환단고기 북부여의 건국,해모수 단군 대단군의 통치권이 약화되고 부단군과 지방 군장들의 목소리가 커지던 고조선 말기에 한민족의 새 역사를 개창한 분이 바로 북부여를 건국한 해모수이다. 해모수는 요하 상류에 위치한 고조선의 제후국인 고리국 출신으로 BCE 239년 웅심산(지금의 길림성 서란)에서 기두하였다. 그 후 백악산 아사달을 점거하고, 당시 고열가 단군의 빈자리를 대신하고 있던 오가五加 부족장들의 공화정을 철폐하였다. 이에 백성들이 해모수를 단군으로 추대함으로써, 북부여의 역사가 시작되었다(BCE 232). ‘북부여’는‘ 북쪽에 있는 부여’라는 뜻이다. 고조선의 제3왕조 시대인 대부여의 북녘 땅을 중심으로 나라를 열었기 때문에,‘ 대’자를‘ 북’자로 .. 2017. 3.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