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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이야기/잊혀진 역사102

<환단고기>한국 고대문명의 세 왕조, 7천년 역사의 실체-홍산문명 한국 고대문명의 세 왕조, 7천년 역사의 실체-홍산문명 한국 고대문명의 세 왕조, 7천년 역사의 실체-홍산문명 9천년 한민족사의 위대한 증언 안경전 종도사님의 『환단고기桓檀古記』 이야기 - CNN 전직 기자 조 카포라렐로Joe Capolarello와의 인터뷰- ◎ 4대 문명인 메소포타미아 문명 이전에 환국의 고대문명이 존재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으며, 어떻게 그걸 믿을 수 있는가? ▶고대 한국문명의 존재를 입증해주는 것이 중국에서 발견된 홍산문화이다.[지도] 만리장성 밖에서 발굴된 홍산문화는 동북아에서 독자적으로 발전한 문명으로서 황하문명보다 시기적으로 앞서는 문명이다. 그래서 지난 백년 동안 발굴이 계속되어 온 이 홍산문화를 학계에서는 소위 ‘제5의 문명’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내몽고 유적지에서 .. 2019. 8. 19.
<경술국치>한일병탄조약-경술국치 한일병탄조약-경술국치 한일병탄조약-경술국치 사실은 순간순간 놓치기 쉽다. 기억으로 붙잡아도 망각의 강으로 스러져 간다. 사진은 사실을 붙잡아 두는 훌륭한 도구다. 포착된 사진들은 찰나를 역사로 만들어 준다. 사진 속에서 진실을 찾아보자! 하루는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조선은 원래 일본을 지도하던 선생국이었나니 배은망덕背恩忘德은 신도神道에서 허락하지 않으므로 저희들에게 일시의 영유領有는 될지언정 영원히 영유하지는 못하리라.” 하시니라. (도전 5편 118장)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조선을 잠시 다른 나라에 넘겨주고 천운天運을 기다리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조선을 서양으로 넘기면 인종이 다르므로 차별과 학대가 심하여 살아날 수 없을 것이요 청국으로 넘기면 그 민중이 우둔하여 뒷감당을 못할 것이요 일본.. 2019. 8. 6.
<환단고기>9천년 한민족사는 신화가 아니라 현실 역사다!!! 9천년 한민족사는 신화가 아니라 현실 역사다!!! 9천년 한민족사는 신화가 아니라 현실 역사다!!! 안경전 종도사님의 환단고기(桓檀古記) 이야기 ◎ ‘단군조선의 역사를 제대로 한 번, 꼼꼼히 새겨보자’는 생각으로 이번 대담의 질문들을 준비했습니다. 오늘은 ‘단군’이라는 호칭에 관한 이야기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습니다. ▶육당 최남선에 의하면 ‘단군’이란 말은 몽고어‘텡그리’에서 왔습니다. ‘천天’과 ‘무巫’를 뜻한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단군조선 때 단군은 나라를 다스리고 백성을 이끌어가는 왕이었고 동시에 온 국민을 이끌고 하늘에 올리는 제사를 관장하는 제사장이었습니다. 단군조선의 초대 단군왕검은 운사雲師 배달신으로 하여금 강화도 마리산의 참성단을 비롯해 태백산 천황단, 지리산 노고단 등 지금도 남아 있.. 2019. 6. 28.
<대한만국 임시정부 수립>3.1운동과 상해 임시정부 수립 3.1운동과 상해 임시정부 수립 3.1운동과 상해 임시정부 수립 사실은 순간순간 놓치기 쉽다. 기억으로 붙잡아도 망각의 강으로 스러져간다. 사진은 사실을 붙잡아 두는 훌륭한 도구다. 포착된 사진들은 찰나를 역사로 만들어 준다. 사진 속에서 진실을 찾아보자! 이 때 상제님께서 여러 성도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이 지방을 지키는 모든 신명을 서양으로 보내어 큰 전란戰亂을 일으키게 하였나니 이 뒤로는 외국 사람들이 주인 없는 빈집 드나들 듯하리라. 그러나 그 신명들이 일을 다 마치고 돌아오면 제 집 일은 제가 다시 주장하게 되리라.” 하시니라. (도전 5편 25장) 고종의 죽음과 3.1운동 1919년 1월 21일 아침 6시 고종 태황제께서 승하하셨다. 고종은 상명지통喪明之痛(아들이 죽은 슬픔), 고분지통鼓盆之痛(.. 2019. 6. 26.
<볼셰비키 혁명>러시아 10월혁명 러시아 10월혁명 러시아 10월혁명 사실은 순간순간 놓치기 쉽다. 기억으로 붙잡아도 망각의 강으로 스러져간다. 사진은 사실을 붙잡아 두는 훌륭한 도구다. 포착된 사진들은 찰나를 역사로 만들어 준다. 사진 속에서 진실을 찾아보자! 하루는 백남신과 함께 전주 남문 누각에 오르시어 글 한 장을 써서 불사르신 뒤에 한동안 누군가를 기다리시다가 다시 글을 써서 불사르시고 잠시 후 또 한 장의 글을 써서 불사르시니 옥골선풍의 한 아름다운 청년이 상제님 앞에 이르러 고개를 숙인 채 눈물을 흘리며 살려 주시기를 빌거늘 상제님께서 벼락같이 호통치시며 “한 번 부르면 올 것이지 어찌 세 번 만에 오느냐!” 하시고 붓에 먹을 묻혀 양미간에 점을 찍으시니 그 청년이 곧 물러가니라. 그 뒤에 김갑칠이 전주 서천교(西川橋) 다릿.. 2019. 6. 24.
<을미사변>을미사변,조선의 국모 명성황후 시해사건-을미사변 을미사변,조선의 국모 명성황후 시해사건-을미사변 을미사변,조선의 국모 명성황후 시해사건-을미사변 을미사변(1895년) 하루는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조선은 원래 일본을 지도하던 선생국이었나니 배은망덕(背恩忘德)은 신도(神道)에서 허락하지 않으므로 저희들에게 일시의 영유(領有)는 될지언정 영원히 영유하지는 못하리라.” 하시니라. -도전 5편 118장 작전명 ‘여우사냥’이 시작됐다. 1895년 10월8일(음력 8월20일) 새벽 5시경 광화문 앞에 일단의 일본인 낭인浪人들이 일본군 수비대, 조선 훈련대와 함께 도착했다. 이들은 이미 새벽 3시경 공덕리孔德里의 별장(아소정我笑亭)에 유폐되어 있던 대원군을 강제로 끌어내어 궁으로 향했다. 대원군과 훈련대를 끌어들인 것은 향후 사건을 조선인들에 의한 반란으로 조작.. 2019. 6. 24.
<광개토대왕>광개토호태왕비의 비밀 광개토호태왕비의 비밀 광개토호태왕비의 비밀 호태왕비는 광개토호태열제의 사후 2년 만인 서기 414년에 그의 아들 장수열제가 세운 것이다. 일반적으로 금석문의 기록은 당대에 쓰인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후세에 쓰인 사서보다 정확성이 높다고 본다. 호태왕비문도 마찬가지로 『삼국사기』나 『삼국유사』보다는 정확성이 훨씬 높을 수밖에 없다. 비문에 보면 광개토호태왕은 시조로부터 17세라고 기록되어 있다. 호태왕은 고주몽으로부터 따지면 왕위로는 19대 왕이요, 혈통으로 따지면 13세손이 된다. 그런데 어째서 호태왕비에서는 17세손이라고 하였을까? 호태왕비가 발견되고 그것을 해독한 이후로 누구도 풀지 못하였던 이 미스터리가 『환단고기』를 통하여 풀렸다. 『환단고기』에서는 고주몽이 북부여의 단군으로 등극한 후 해모수.. 2019. 6. 18.
<고두막한>동명성왕 고주몽 동명성왕 고주몽 동명성왕 고주몽 고주몽을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서는 동명성왕 혹은 동명제라고 칭하고 있다. 그런데 아무런 설명이 없다. 왜 그런 칭호를 얻었는지에 대해서. 결론적으로 고주몽을 동명성왕이라고 하는 것은 엄청난 역사 왜곡의 문제가 내포되어 있다는 것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동명제는 원래 고두막한이다. 그가 스스로 ‘동명東明’이라고 불렀기 때문이다. 고두막한은 졸본 땅에 부여를 세운 다음 졸본부여라고 했고, 동명부여라고도 했다. 그래서 동명왕이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어찌하여 고주몽을 동명왕으로 부르게 되었는가? 좁게 보면 고두막한만이 동명왕이 되는 것이지만 넓게 본다면 고두막한을 이은 고무서 단군, 또 그 뒤를 이은 고주몽도 동명왕이라고 볼 수도 있다. 모두 동명부여의 왕이기 때문이.. 2019. 6. 18.
<김부식>삼국사기의 고구려 건국 연도를 서기전 37년이라고 한 이유 삼국사기의 고구려 건국 연도를 서기전 37년이라고 한 이유 삼국사기의 고구려 건국 연도를 서기전 37년이라고 한 이유 고주몽이 북부여의 단군이 된 이때가 서기전 58년이다. 서기전 79년생이므로 이때의 나이는 『삼국사기』에서 말한 대로 22세가 된다. 고주몽은 북부여의 왕위를 물려받은 것이지 정복 전쟁을 통하여 고구려를 창업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므로 처음에는 북부여(졸본부여)의 단군이었다. 그런데 어째서 고구려의 시조라고 하는가? 북부여의 단군으로 다물多勿이라는 연호를 사용하면서 22년을 지내 오다가 서기전 37년에 이르러 연호를 평락平樂으로 바꾸면서 나라 이름도 해모수의 고향이었던 고구려로 바꾸었다. 이로부터 고구려의 시조가 된 것이다. 『삼국사기』에서는 이때를 고구려의 건국으로 본 것이지만 고주몽으.. 2019. 6. 18.
<고구려>고주몽의 혈통 고주몽의 혈통 고주몽의 혈통 해모수의 장자인 모수리는 북부여의 2대 단군이 되었고, 그의 동생 고진高辰은 고리군의 군왕(稾離郡王)으로 봉작을 받았다. 북부여의 제후인 셈이다. 고진의 손자 불리지弗離支(일명 고모수高慕漱)가 있었는데 이 불리지가 바로 하백의 딸 유화와 사통한 주인공으로 고주몽의 아버지이다. 그러니 고주몽은 해모수의 아들이 아니라 고손자高孫子가 된다. 고주몽이 태어난 해는 서기전 79년 임인년壬寅年이고 생일은 5월 5일이다. 이것이 『환단고기』가 밝혀 주고 있는 고주몽의 혈통과 탄생에 관한 비밀이다. 불리지는 요절하였기 때문에 미혼모 유화는 어린 고주몽을 안고 사방으로 돌아다니다가 동부여의 해부루 왕에게 찾아갔다. 해부루는 혈통으로 보자면 고주몽의 7촌 아저씨였으므로 흔쾌히 고주몽과 유화를 .. 2019. 6. 18.
<동명왕>해부루의 동부여와 고두막한의 북부여(졸본부여) 해부루의 동부여와 고두막한의 북부여(졸본부여) 해부루의 동부여와 고두막한의 북부여(졸본부여) 한무제의 침입으로부터 나라를 지킨 고두막한은 고우루 단군에게 제위를 물러나라고 요구하였다. 압박을 견디지 못한 고우루 단군이 붕어하자 그의 동생 해부루가 뒤를 이어 단군으로 즉위하였다. 그러나 고두막한이 군대를 보내 계속 위협하므로 해부루는 국상 아란불의 주청을 받아들여 가섭원으로 옮겨 가게 된다. 이것이 바로 동부여이다. 동부여의 탄생은 한무제의 북부여 침공과 구국의 영웅 고두막한이 배경에 있는 것이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서는 이와 같은 장황한 스토리를 모두 생략하고 지극히 신화적으로 기술한 까닭에 믿을 수도 없고 안 믿을 수도 없는 절름발이 기록이 되고 말았다. 「북부여」에서 아란불에게 꿈에 나타나 .. 2019. 6. 17.
<고두막한>고조선,북부여,한사군 고조선,북부여,한사군 고조선,북부여,한사군 고조선은 본래 초대 단군왕검께서 나라를 진한, 번한, 마한이라는 삼한으로 나누어 다스렸다. 진한은 북만주, 마한은 한반도, 번한은 요동, 요서, 하북성, 산동성, 절강성까지 포함하는 중국 대륙 동부 지역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삼한은 나중에 삼조선으로 관제가 변경이 되었기 때문에 진한은 진조선, 번한은 번조선, 마한은 막조선이 되었다. 단재 신채호도 『조선상고사』에서 삼조선을 말하고 있다. 한편 해모수 단군이 붕어하던 서기전 195년에 연나라 사람 위만이 번조선의 기준왕에게 망명을 요청하였다. 준왕은 위만에게 연나라와의 접경 지대인 서쪽 변방의 국경수비대 임무를 맡겼으나, 위만은 그 은혜를 배반하고 1년 뒤에 준왕의 왕험성으로 쳐들어와서 나라를 강탈하였다. .. 2019. 6.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