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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이야기127

<불가리아>서방으로 진출한 부여족 서방으로 진출한 부여족 서방으로 진출한 부여족 강단 사학계는 부여 역사를 외면하지만, 부여사는 단재 신채호가 한국 민족을 부여족이라고 부를 정도로 한민족사의 골간을 이룬다. 몇 안 되는 부여사 연구가 중에 신용하 교수는, 부여가 최소한 BCE 5세기부터 CE 5세기까지 약 천여 년 동안 만주 일대에 존재하였으며 CE 4세기 전반까지 동북아의 최선진국이었다고 말한다. CE 5세기라면『 환단고기』가 전하는, 북부여에서 분파된 마지막 부여인 연나부부여(서부여)가 멸망한 때(494)와 일치한다. 신 교수의 연구에 의하면, 4세기 말경 부여족의 일파가 중앙아시아의 카스피 해와 흑해 사이에 위치한‘ 캅카스’지방으로 이주하였고, 그 후 5∼7세기 초까지 돈강 유역과 북캅카스 지역으로 계속 이주하였다. 7세기의 서양사.. 2017. 8. 28.
<북부여>북부여의 구국 영웅,고두막한-동명왕 북부여의 구국 영웅,고두막한-동명왕 북부여의 구국 영웅,고두막한-동명왕 북부여는 4세 단군에 이르러 역사적인 큰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BCE 109년, 한 무제가 위만의 손자인 우거왕이 다스리던 위만조선으로 쳐들어왔다. 한나라는 초기에 연신 패하였으나 이간책으로 위만정권 지도층을 분열시켜 결국 우거를 죽이고 왕검성을 점령하였다(BCE 108). 이때 한 무제는 새로운 점령지에‘ 한나라의 군현[漢四郡]’을 설치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우거 제거에 공을 세운 한민족의 강한 저항에 부딪쳐 고조선 유민들의 자치를 인정하는 데 그쳐야 했다. 위만정권을 무너뜨린 한 무제는 요동을 넘어 북부여까지 침공하였다. 그런데 당시 북부여의 4세 고우루단군은 워낙 심성이 유약하여 제대로 싸우지도 못하고 도중에 병사하고 말았다.. 2017. 8. 25.
<북부여와 남삼한>북쪽에는 북부여, 남쪽에는 남삼한 북쪽에는 북부여, 남쪽에는 남삼한 북쪽에는 북부여, 남쪽에는 남삼한 준왕이 망하고 위만정권이 들어선 사건은 한민족에게 또 다른 역사 개척의 계기가 되었다. 번조선 땅이 위만에게 강탈당하자 상장군 탁卓이 사람들을 이끌고 한강 이남으로 이주하여 새로이‘ 마한’을 세웠다(BCE 194). 옛 진조선과 막조선의 일부 백성들도 한강 아래로 남하하여 각기‘ 진한’과‘ 변한’을 세웠다. 마한은 호남의 익산을, 진한은 경북 경주를, 변한은 경남 김해를 중심으로 하여 형성되었다. 비록 불의한 위만정권 때문에 남하한 것이지만, 한강 이남에서 새로운 삼한시대를 연 것이다. 단재 신채호는‘전후삼한설前後三韓說’을 주창하여 한반도에 형성된 삼한을‘ 후삼한(남삼한)’이라 부르면서, 고조선 시대의‘ 전삼한(북삼한)’과 구별하였다. .. 2017. 8. 24.
<북부여>북부여의 건국,해모수 북부여의 건국,해모수 북부여의 건국,해모수 대단군의 통치권이 약화되고 부단군과 지방 군장들의 목소리가 커지던 고조선 말기에 한민족의 새 역사를 개창한 분이 바로 북부여를 건국한 해모수이다. 해모수는 요하 상류에 위치한 고조선의 제후국인 고리국 출신으로 BCE 239년 웅심산(지금의 길림성 서란)에서 기두하였다. 그 후 백악산 아사달을 점거하고, 당시 고열가 단군의 빈자리를 대신하고 있던 오가五加 부족장들의 공화정을 철폐하였다. 이에 백성들이 해모수를 단군으로 추대함으로써, 북부여의 역사가 시작되었다(BCE 232). ‘북부여’는‘ 북쪽에 있는 부여’라는 뜻이다. 고조선의 제3왕조 시대인 대부여의 북녘 땅을 중심으로 나라를 열었기 때문에,‘ 대’자를‘ 북’자로 바꾸어 북부여라 한 것이다. 그것은 망해 가던.. 2017. 8. 23.
<동이족>외국학자들이 보는 동이족(東夷族) 외국학자들이 보는 동이족(東夷族) 외국학자들이 보는 동이족(東夷族) 중국의 역사를 논할 때, 그 중심에 있으면서 동아시아를 지배한 어질고, 예절바르고, 창의력이 넘치고 또 평화를 사랑하는「동이족」을 빼놓을 수가 없다. 해동성인(海東聖人)으로 추앙받는 공자(孔子)도 동이족이요, 주역과 역법(曆法)을 창안했다는 희화자(羲和子)는 물론, 농사법과 의학을 발전시켰다는 염제신농씨(炎帝神農氏)도 동이족이다. 동양의 태평성대를 이룩했다는 최고의 성군(聖君) 요(堯) 임금과 순(舜) 임금도 동이족이요, 최초로 철갑(鐵甲)에 구리투구로 무장하여 박치기 전법으로 유명한 치우(蚩尤) 천황도 동이족이요, 문자(文字, 소위 漢字)를 만든 것도 동이족이요, 절개로 유명한 백이(伯夷)와 숙제(叔弟)까지도 동이족이다. 이에 놀란 중.. 2017. 8. 22.
<단군조선>식민사학자 이병도를 회개시킨 최태영박사 식민사학자 이병도를 회개시킨 최태영박사 식민사학자 이병도를 회개시킨 최태영박사 "식민사학자 이병도를 회개시킨 최태영박사" 올곧이 역사를 관통한 학자의 일생 스스로 강사가 돼 학도병 권유 연설피해 70세 상고사 연구시작, 100세 때 책발간 최태영박사 개교 100주년을 맞이해 한국인 최초의 법학 정교수이자 본교의 첫 한국인 정교수였던 최태영 박사를 만났다. 1900년생인 최 박사는 현재는 노환으로 병원에 입원해 간병인의 도움을 받고 있었지만 병실안에 가지런히 놓인 책들과 박사의 온화한 말씀은 올곧은 학자의 일생(一生)을 웅변하고 있었다. 깨끗하게 옷을 갈아입고, 의자에 앉아 기자를 맞은 최박사는 보성전문학교의 정교수가 된 과정을 이렇게 설명했다. 최 박사는 경신학교를 졸업한 뒤 영미법을 배워오라는 부친의 .. 2017. 8. 18.
<동북아역사재단>식민사학자들에게 사기당한 노무현 정권 식민사학자들에게 사기당한 노무현 정권 식민사학자들에게 사기당한 노무현 정권 2017년 04월 26일 허성관 칼럼 경기일보 삼청동 국무총리 공관에서 2003년 당시 고건 총리 주재로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한 대책회의가 열렸다. 동북공정의 주요 내용은 ‘현재의 중화인민공화국 영토내에서 일어났던 역사는 모두 중국의 역사라는 관점에서 중국정부가 중국사를 정리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현재 중국영토에 있었던 고조선 고구려 발해 등 우리민족의 역사가 중국사의 일부가 된다. 노무현 정부 입장에서는 우리 고대사가 중국사의 일부로 편입되는 것을 수수방관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우리나라 식민사학자들이 일제 조선총독부가 날조한 역사를 이어받아 위만조선이 평양을 중심으로 한 한반도 북부에 있었고, 한(漢)나라가 위만조선을 .. 2017. 8. 17.
<단재 신채호선생>역사로 민족정신을 깨운 단재 신채호선생 역사로 민족정신을 깨운 단재 신채호선생 역사로 민족정신을 깨운 단재 신채호선생 설 명절을 막 지낸 2월 21일은 단재 신채호 선생께서 여순감옥에서 순국하신 지 71주기 되는 날이었다. 이날 충북 청원군 낭성면 귀래리 단재 사당에서는 ‘단재 신채호선생 기념사업회’와 ‘한국민족예술인 총연합회 충북지부’ 등의 주관으로 추모행사가 열렸다. 천재적 사학자이자 열렬한 독립운동가였으며 행동하는 지식인으로서 한평생 ‘민족’과 ‘역사’를 가슴에 품었던 단재 신채호. 그의 날카로운 필치는 당시 국정과 일본의 불의를 통렬히 비판했고, 고고한 지성과 뜨거운 민족애는 조선민중의 혼을 깨웠다. 남북 만주와 시베리아를 돌아다니며 민족사의 족적을 더듬어 역사를 바로잡아 동포들에게 자부심과 희망을 심어주고자 했던 신채호 선생. 삼천리.. 2017. 7. 25.
<경술국치>경술국치일,8월29일 일제가 대한제국의 통치권을 강제로 빼앗아 공포한 날-조기계양 경술국치일,8월29일 일제가 대한제국의 통치권을 강제로 빼앗아 공포한 날-조기계양 경술국치일,8월29일 일제가 대한제국의 통치권을 강제로 빼앗아 공포한 날-조기계양 8월 29일 경술국치일에 모두 조기를 달아주세요! 자세한 경술국치일 태극기 게양에 대해 안내해드릴게요. 조기임을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최대한 내려 게양하면 되겠습니다. 단, 차량이나 보행자의 통해에 지장을 주거나 깃대의 길이가 짧은 경우에는경술국치일을 비롯해 태극기를 조기로 달 때는 깃봉에서 깃면의 너비(세로 길이) 만큼 내려서 달아야 하는데요. 민족적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해 경술국치일에 조기를 게양하고 있는데요. 경술국치일 치욕의 역사를 기억하고 아직까지 그릇된 일본의 역사의식에한일병합조약을 체결 후 공포한'경술국치일'입니다. 경술국치(庚.. 2017. 7. 24.
<역사왜곡>동북아는 역사전쟁인데-나라 안은 식민사학자들 세상 동북아는 역사전쟁인데-나라 안은 식민사학자들 세상 동북아는 역사전쟁인데-나라 안은 식민사학자들 세상 지금 국사는 왜 내가 어릴 때 배운 국사와 다를까? 굴절된 역사 읽는 현실, 광복 70년 역사정립 다시 할 때 나는 역사학자가 아니다. 다만 항일 가문에서 성장한 한 시민으로서 우리나라 역사에 대하여 남다른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내가 학교에서 배운 역사가 집안에서 듣던 역사와 다르기 때문에 항상 의문을 가져왔다. ‘대일 항쟁기’에 집안 어른들이 말씀하신 역사를 회고해 보면, 모두 악랄한 일본의 역사 왜곡이었다. 나의 종조부인 초대 부통령 성재 이시영(省齋 李始榮) 선생은 1934년 중국에서 일본 고등계 경찰과 헌병의 수배를 받아 쫓기는 신세였음에도 불구하고 중국과 일본 양국의 우리.. 2017. 7. 14.
<환단고기>환국,배달, 단군조선 6,962년 국통맥2 환국,배달, 단군조선 6,962년 국통맥2 환국,배달, 단군조선 6,962년 국통맥2 환국은 어떤 나라였나? ◎ 오늘은 뜻밖에도 새로운 이야기,『 고기』에 대해 알게 됐습니다. 일연이 그 책을 인용해‘ 옛적에 환국이 있었다’ 했는데, 그러면『 환단고기』에는 이 환국에 대해 어떻게 기술돼 있습니까? ▶『환단고기』 가운데 신라 고승 안함로의 『삼성기』상권은 ‘우리 환족이 세운 나라가 가장 오래 되었다(吾桓建國最古)’로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이 환국은 7대 환인씨에 걸쳐 통치되었다고 기록됐습니다. 고려 때 인물로 추정되는 원동중도 『삼성기』하권서 ‘옛적에 환국이 있었다(昔有桓國)’고 쓰고 있습니다. 나아가‘ 환국의 통치자인 환인은 하늘을 대행해 널리 교화를 베풀어 싸움과 굶주림과 추위가 사라지게 되었고 백성들.. 2017. 7. 12.
<환단고기>환국,배달,단군조선 6,962년의 국통맥1 환국,배달,단군조선 6,962년의 국통맥 환국,배달,단군조선 6,962년의 국통맥 환국-배달-단군조선의 국통계승과정 9천년 한민족사의 위대한 증언 안경전 종도사님의『 환단고기桓檀古記』 이야기 - 환국에서 배달, 단군조선까지 6,962년의 우리 역사 국통맥 “우리 국민들이 한마음으로 보다 중대하게, 시급하게 달려들어야 하는 역사 쪽 주제는 사실 온통 왜곡되고 잃어버린 한민족의 본래 역사부터 되찾아 바로 세우는 일입니다.” “단군조선 건국 연대인 기원전 2333년부터 지금까지 따져서 흔히 우리 역사가 반만년 역사다, 그렇게들 말하는데 그것은 분명히 잘못된 것입니다.” “ 환국은 역대 일곱 분의 환인들이 기원전 7197년부터 기원전 3897년까지 3,301년간 다스렸고, 배달국은 역대 열여덟 분의 환웅들이 기.. 2017. 7. 12.